아베 피에르 신부
50년간 공동체 운영…프랑스인 ‘가장 존경하는 인물’
22일(현지시각), ‘빈민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 신부가 94살로 선종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최근 몇년간 피에르 신부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기업인과 정치인을 제치고 프랑스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지목돼 왔다. 최근 건강상태가 악화된 피에르 신부는 파리에서 기관지염으로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폐 감염으로 숨졌다고 통신은 전했다.
1912년 프랑스 남동부 리옹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피에르 신부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편안한 생활을 포기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대항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면서 프랑스 유대인들을 스위스로 피신시키는 것을 도왔다. 44년 독일군에게 체포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알제리로 피했던 그는 지인들과 함께 파리 교외의 낡은 건물을 수리해 노숙자들을 위한 숙소로 만들었다.
전쟁이 끝난 뒤인 49년, 그는 파리 인근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자립공동체 에마우스를 만들어 빈민 구호 활동에 뛰어든다. 특히 피에르 신부의 활동이 알려진 것은 54년 빈민 구호를 외치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였다. 그는 이날 파리 중심부에서 숨진 여성 노숙자를 거론하며 “친구들이여, 도와주세요. 한 여성이 오늘 새벽 3시에 얼어 숨졌습니다. 그는 전날 받은 퇴거 통지서를 손에 든 채 숨을 거뒀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오늘 밤까지, 늦어도 내일까지는 담요 5000장과 미국식 대형 텐트 300장, 조리기구 200개가 필요합니다”라고 호소했다. 그 뒤 그는 반세기 가까이 빈민 구호 활동에 애썼으며 에마우스는 현재 세계 50개국에서 운영되는 세계적인 빈민 구호 단체로 성장했다.
피에르 신부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9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그에 대해 “끝없는 존경”을 표하며 “우리는 훌륭한 인물, 양심, 미덕의 화신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박현정 기자, 연합뉴스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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