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 스님
나를 울린 이 사람
교황께서 방한한다니 기쁘고 설렌다. 그러나 한편으론 달라이 라마께서 못 오신 데 대한 아쉬움도 크다. 달라이 라마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내 티베트어 선생이었던 한 여학생이다. 일본 유학을 마친 뒤 중국에서 6개월간 머물 때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있던 그해다.
그해 티베트 라싸에서 온 여학생에게서 어렵사리 티베트어 기본을 익히느라 식은땀을 뺐다. 그 친구는 정말 순수했다. 이생에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졌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 기숙사에 놀러가게 되었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서자 경비가 우리를 붙잡았다. 학생증을 보여주고 학과, 이름, 출신 등을 다 말하고 나서야 들여보내줬다. 이상하다 싶었으나 묻지 않았다. 한참 가니 오른쪽 끝에 여학생 기숙사가 보였다. 기숙사로 들어서는데 경비가 또 잡는다. 이번에도 친구의 신분증과 얼굴을 꼼꼼히 대조했다. 다른 학생들에겐 안 그러는데 우린 칸칸이 검문이었다.
나는 이 낯선 풍경에 슬그머니 화가 났다. 친구에게 물었더니 4년 동안 들고날 때마다 항상 그랬다는 것이다.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란다. 이유는 라싸에서 왔다는 것, 오직 그것뿐이라고. 가슴이 아팠다. 나라 잃은 설움이 이런 것이려나 싶어서.
그의 방은 4층인가 5층의 맨 끝 방에 있었다. 혼자서도 살기 좁은 공간에 이층침대 두 개에 네 명이 살고 있었다. 소수민족에겐 가장 작은 방이 제공된다고 했다. 침대와 침대 사이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공간뿐이었다. 어느 침대를 쓰느냐고 묻자 친구는 오른쪽 아래를 가리켰다. 들여다보니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베개 옆 벽에 붙은 흰 천. 궁금해서 물었더니 친구는 순간 당황한 듯 두리번거렸다. 눈치를 채고 내가 방문을 닫자 했다. 하지만 그 방은 낮에는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 이런. 할 말을 잃었다.
다시 천에 눈을 돌리자 친구는 천천히 천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내 눈 가득 들어온 하얀 성, 그렇다. 라싸의 포탈라궁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조국을 잃고 떠나온 저 속이 오죽했을까. 사진 속에 감추어둔 그리움은 또 얼마일까. 눈물이 나서 난 고개도 못 돌렸다. 잠시 후 그녀는 침대 밑에서 달라이 라마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뜨거운 것이 가슴에 턱 맺혔다. 그래도 거기까진 참을 만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친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한 맺힌 울음으로, 포탈라궁을 바라보면서.
그날 우리는 티베트 민요를 들으며 길게 울었다. 그 친구의 친구들도, 그리고 나도.
원영 스님 (<불교방송> ‘아침풍경’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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