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행 기내 인터뷰
세월호 리본 떼라는 권유받았지만
거부했던 뒷이야기 털어놔
“중국 갈 생각있냐고 묻는다면
내일이라도 가겠다 답할 것”
세월호 리본 떼라는 권유받았지만
거부했던 뒷이야기 털어놔
“중국 갈 생각있냐고 묻는다면
내일이라도 가겠다 답할 것”
“나는 (유족들과) 연대하기 위해 이것(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이것을 달고 반나절쯤 뒤에 어떤 이가 다가와 ‘떼는 게 더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 비극적 사건에 중립적이어야만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현지시각) 방한 일정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세월호 유족들에게 다가가 위로했던 행동들이 정치적으로 오해될 것을 우려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교황은 방한 이틀째인 15일 대전에서 미사를 집전하기에 앞서 세월호 희생자의 유가족 등을 따로 만나 위로하면서 세월호 추모의 상징이 된 노란 리본을 선물받아 가슴에 달았다. 이후 방한 기간 내내 교황의 가슴에 달려 있던 노란 리본은 이날 귀국 비행기 안에서도 그대로였다. 교황은 “인간의 고통 앞에 서게 되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며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이런 일을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잃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는 “내 마음에서는 (유족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며 “내가 말로 하는 위로가 숨진 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지는 못하지만, 인간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으로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교황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밝히면서 그들의 인간적 존엄을 높이 평가했다. 교황은 “한국 민족은 침략을 겪고 모욕을 당했지만 인간적인 존엄을 잃지 않았다”며 “(위안부) 여성들도 착취당하고 노예가 됐지만, 이 모든 고통에도 존엄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는 “분단으로 많은 이산가족이 재회하지 못하는 것은 고통”이라며, 이 고통이 끝나도록 기도할 것을 제안하고 예정에 없던 침묵의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교황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편안한 태도로 언급했다. 자신의 세계적인 인기에 관해 질문을 받은 교황은 “(인기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죄와 잘못을 생각하며 자만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2년이나 3년 뒤에 나는 아버지 하느님의 집으로 떠날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에이피>는 바티칸 소식통의 말을 따서 “교황이 이전에 가까운 이들에게는 자신의 시간이 몇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짚었다. 교황은 생전 은퇴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교황은 77살로 고령인데다 젊은 시절 폐질환을 앓아 일부를 절제했는데도 이번 방한 등 바티칸 안팎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교황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도 거듭 밝혔다. 그는 “내게 중국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하다. 내일이라도 가겠다’이다”라며 “교황청은 중국 국민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바티칸은 1951년 단교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교황 전세기의 중국 영공 통과가 허용되는 등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진 상황이다.
외신들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반군인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미군의 공습과 관련해 교황이 “부당한 침략자”를 저지하는 게 합법이라고 조건부로 인정한 점도 주목했다. 그러나 교황은 한 국가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개입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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