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1일 파리의 테러 항의 집회 때 많은 무슬림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들고 걷던 <샤를리 에브도>의 ‘극단주의자들에게 지친 무함마드’ 만평. “얼간이들에게 사랑받는 건 힘들어”라는 문구가 보인다. 샤를리 에브도 제공
여기 두 개의 글이 있습니다. 하나는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의 글입니다. 박노자 교수는 지난 2일 운영하고 있는 ’한겨레 블로그’에 ‘“극단주의”에 대한 감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습니다. 글은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가 오슬로로 돌아오는 길에 이주민으로 추정되는 다른 인종과 마주하며 겪었던 두 차례의 생생한 경험을 싣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의 유럽 사회에 대한 고찰을 담아 "이슬람계의 일부 청년들이 칼을 차고 지하철에 소요하는 등 “극단주의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과연 오로지 광신적 종교 때문일까요? 오히려 이와 같은 하루하루의 소외, 피착취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절망의 결과는 아닐까요?"라고 묻습니다.
다른 하나는 소설가 장정일 작가의 글입니다. 장 작가는 5일치 <한겨레> ‘왜냐면’에 ‘‘이슬람근본주의’와 ‘관용의 타락한 사용법’에 대해’라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장 작가는 이 글에서 ‘오만한 서구 대 핍박받는 이슬람’이라는 구도로 이번 사건을 보는 이들을 비판합니다. 그는 "결코 이슬람은 약자가 아니다. 이슬람은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한 숫자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라며 "이슬람은 서구를 향해 자신을 아이 취급하고 예외로 다루어 달라고 더는 징징거리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한겨레>는 박노자 교수와 장정일 작가의 글이 정확하게 대비되지는 않지만,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보는 다른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글이라고 판단해 전문을 나란히 싣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글을 읽어 보시고 판단해보세요.
아울러 "이 사건은 종교갈등이라기보다 계급갈등이라는 자본주의의 보편성으로부터 초래된 프랑스의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에 가깝다"고 본 이택광 경희대 교수의 지난달 20일 <한겨레> 기고 글
( ▷ 관련 기사 : 테러범을 키운 것은 프랑스 자신이다)도 함께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장정일 작가와 견해가 부딪히는 부분이 있을테니까요.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전문] “극단주의”에 대한 감상 / 박노자( ▷ 관련 글 바로가기)
딱 1주일 전에 제게 생긴 일이었습니다. 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동아세아 약자 보호 담론” 관련의 회의를 마치고 노르웨이로 귀환하는 도중이었습니다. “약자”를 이야기해야 하는 회의이었지만, 물론 그 참석자 중에서는 약자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들이 중산층 이상의 출신이자 백인인 서구인 동아시아학자 이외에는, 일본과 중국의 명문대 교수들이 와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영어로 발표를 하는 자리이었죠. 회의시간의 약 30%는, 서구인 중산층이 특별히 좋아하는 동물보호 문제 (동물도 약자입니다!)나 고대 유적 보호 문제에 대한 토론으로 소모됐습니다. 비정규직 관련의 발표는 단 한 건이었죠. 발표자는 정규직 교수이었지만요. 좌우간, 이 회의를 마치고 오슬로로 돌아가려는 길에, 제가 한 번 봉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지하철, 공항으로 가는 길...한 역에서 제가 탄 차량에 돌연히 터키나 아랍계 출신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탔습니다. 그의 얼굴 표정에는 모종의 비장한 희열 같은 것이 역력히 보였습니다. 그 벨트 뒤에 긴 칼을 차고 있었고요. 그는 타자마자 그 칼을 빼고 저를 포함한 거기에 앉은 몇 명의 백인들을 아주 자세히 응시했는데, 일단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심산인지 결국 칼을 다시 벨트 안에 넣고 무슨 종교 음악 같은 것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얼굴을 본 뒤로는 제 등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긴 칼에 제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을, 벌써 상상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나 웬일인지 문은 계속 닫히지 않았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약 5분이 지나자 그 문 안으로 중무장한 경찰 몇 명이 막 들어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그 중동계 남성을 잡고서 끌고나갔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드디에 폐문되고 열차가 출발했습니다. 신고가 이미 접수돼 지하철 곳곳에서 포진된 무장경찰들이 기회를 기다렸듯 이런 “잠재적 테러리스트” (?)를 사냥했던 모양입니다. 그 남자가 누구이었는지, 이 칼로 뭘 하려 했는지, 그리고 잡힌 뒤의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 저는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열차가 떠나고 만 거죠.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지지자로 추정되는 무장괴한이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호주 시드니 금융중심가 카페 현장 주변에 12월 15일(현지시간) 완전 무장한 특수경찰이 대기해 있다. 시드니/AP 연합뉴스
오슬로 도착이 늦어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막차가 이미 떠난 상태이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택시를 탈 수밖에. 물론 학회 참석차 외유한 만큼 그 택시 값도 결국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의해서 보상돼야 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물론 대학도 아니고 이 “약자 보호”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대재벌 폴크스바겐재단의 돈으로 보상될 셈이죠. 그래도 비싼 택시인지라, 일단 최저가를 약속하는 업체를 골라 탄 것입니다. 운전수는 파키스탄 출신의 이민자이었습니다. 노르웨이인 택시운전수는 이 시간대에 일하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대체로 돈에 궁한 아시아,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몫이죠. 차를 타고 가는데, 도중에서는 운전수는 제게 돌연히, 본인이 받아야 할 돈이 애당초에 약속한 값보다 약간 (한화 5만원 정도로) 더 커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고, 주말인데다가 야간인데다가 오슬로교외의 위성도시로 가기 때문에 규정상 가격이 더 높아야 한다고, 막 제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게 이 가격차는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모든 것을 폴크스바겐 돈으로 보상받을 처지에 말입니다. 그러나 이게 자본주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의 체질화된 습관인지, 왠지 “바가지”로 느껴지고, “더” 내기 싫었습니다. 저는 항의하기 시작하고, 운전수는 하는 수없이 회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회사의 판단은, 운전수의 말은 맞지만 일단 애당초에 약속한 가격을 지키는 게 업체의 노선인 만큼 더 이상 요구하지 말고 그냥 손님을 모시고 가라는 거이었죠. 회사 대표자의 목소리는 외국인 악센트 없는 아주 완벽한 노르웨이어이었습니다. 토박이이었나 봅니다. 운전수의 얼굴 표정은 아주 시무룩해졌지만, 그는 업체의 지침 (?)에 별 반대하지 않고 그냥 갔습니다. 단, 제가 지불을 하고 차 내렸을 때에 제게 분노에 찬 목소리로 몇 마디 했습니다. “내가 사기 치려 한 줄 아시오? 아니오. 나중에 규정을 참조해보십시오. 내 말은 다 맞았습니다. 나는 그냥, 내 아이 먹여살리려고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지금 이 이상한 가격으로 갔다온 것은, 제게 아무 이득이 없습니다. 회사가 공항의 택시 관리자로부터 보상받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주겠어요?” 저는 그 말 속의 분노에 깜짝 놀랐는데, 이미 늦었습니다. 카드로 지불한 뒤로는, 추가적 요금을 카드로 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카드단말기는, 요금기의 숫자만 받아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게 노르웨이 현금이 하나도 없어 결국 운전수에게 사과만 하고 헤어져야 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아이팟으로 규정을 참고했습니다. 운전수 말은 다 맞았습니다. 그가 바가지를 요구한 것도 아니고 반대로 제가 업체들 간의 출혈 경쟁을 이용해서 규정보다 약간 더 싸게, 그것도 남의 돈으로 택시 탄 거죠. 그날 밤에 잠잘 수 없었습니다. 너무너무 미안했습니다.
우리 (즉 구주의 중산층 백인 고학력자)들이, 우리들을 그들 (즉 이민자 계통의 새로운 무산계급)의 눈으로 본다면 과연 어떻게 보일까요? 어릴 때부터 물려받은 문화자본 덕에 대학교수 등등의 “편리한 자리”들을 두루 다 차지하고, 각종 회의 후원 등 대자본과 국가가 주는 혜택들을 두루 다 차지하고, 남들이 아이를 먹여살리려고 피나도록 노동하는 그 사이에 실제 약자와 무관한 “약자 보호” 이야기나 남의 돈으로 하고, 그러면서도 노동자가 무슨 요구라도 하면 싫은 소리부터 하는 “짠” 고객의 노릇을 한, 이런 모습들은 과연 그분들의 눈으로는 어떻게 보일까요? 이슬람계의 일부 청년들이 칼을 차고 지하철에 소요하는 등 “극단주의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과연 오로지 광신적 종교 때문일까요? 오히려 이와 같은 하루하루의 소외, 피착취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절망의 결과는 아닐까요?
일상 속에서는 그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가해자들입니다. 우리가 호의호식하는 하루하루는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죠. 폴크스베간이 우리에게 주는 연구비가, 결국 그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대공장들의 노동자들로부터 수탈한 잉여가치의 일부분이라는 점부터 생각해볼 만합니다. 물론 그들의 비극을, 개개인의 칼질이 해결하지 못할 것도 뻔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봐도 이게 맞는 길은 아니겠죠. 한데, 제 모가지는 그렇게 해서 칼에 날아가도, 저는 항의할 만한 입장에 서있지 못합니다. 남의 피땀을 빨아먹은 만큼 천벌을 받는 것일 뿐이니까요.
[전문] ‘이슬람근본주의’와 ‘관용의 타락한 사용법’ / 장정일( ▷ 관련 글 바로가기 )
2015년 1월7일, 파리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에 대한 논의가 끝날 줄 모른다. <한겨레> 지상에서도 여러 칼럼니스트와 독자가 의견을 밝혔다. 그 가운데는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가 약자를 향한 폭력이라는 주장이 많다. 샤를리 에브도의 과격한 풍자를 꾸짖는 사람들은 상식처럼 보이는 ‘표현의 자유’가 알고 보면 서구 중심주의적인 폭력이며 서구 세속주의자에게만 유효한 무기라고 비난한다. 풍자를 당하는 이슬람은 서구 주류 사회 안의 절대 약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관용은 약자를 보살피고 개별성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오만한 서구 대 핍박받는 이슬람’이라는 구도로 이번 사건을 본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쿠아시 형제를 지도한 이슬람근본주의에 눈감는 반쪽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영미 제국주의가 중동에 심어놓은 이스라엘이 이슬람근본주의를 불러왔다거나, 쿠아시 형제가 이슬람근본주의에 심취하여 예멘 알카에다와 접속하게 된 원인 또한 프랑스 다문화주의 정책의 실패에서 찾는 분석이 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도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1988년, 영어로 집필되고 출판된 <악마의 시>라는 소설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와 코란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이듬해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로부터 사형(Fatwa)을 선고받았다. 현재 루슈디는 330만달러의 현상금을 목에 걸고도 생명을 부지하고 있지만 이탈리아·노르웨이·터키의 번역자는 피습을 받고 중상을 당했으며, 일본인 번역자 이가라시 히토시 교수는 자신이 근무하던 쓰쿠바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칼을 맞고 죽었다. 루슈디와 <악마의 시> 번역자들은 하나같이 이란 사람이 아닌데,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무슨 권한으로 타국의 국민에게 사형 선고와 그것에 준하는 처벌을 선동할 수 있었던 것일까? 각 나라의 주권과 국제법을 괘의치 않는 이슬람근본주의가 있는 한, 세계는 여전히 교황이 파문권을 행사하던 중세다.
세계화와 세속화에 직면해 앞으로 점점 증가하는 풍자와 조롱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슬람의 운명이다. 이슬람권 안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나라에 속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이 운전을 할 수 없고, 이집트 여성은 청바지를 입을 수 없다. 이슬람 율법이 강한 국가에서 여성이 남자 의사의 진료를 꺼리다가 죽어가거나, 강간을 당한 누이를 남자 형제들이 ‘명예살인’하는 것도 다반사다. 그런 나라에서 이슬람을 비판하거나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아예 자살 행위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이슬람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근거가 된다. 이슬람은 그때마다 테러로 응수할 텐가? 설령 누가 진지하고 예의를 갖춘 비판을 하더라도 오늘 같은 상황에서는 테러를 피하기 힘들다.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 있는 주간지 의 사무실에 난입한 무장 괴한들의 총기 난사로 적어도 12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진 직후 한 시민이 이 주간지 최신호를 읽고 있다. 1면에는 2022년 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다는 도발적 설정으로 논란에 휩싸인 소설 의 작가 미셸 우엘베크를 그린 만평이 실려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관용은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 가장 많이 들먹여진 용어다. 모두들 관용에 대해 한마디씩 하지만, 관용의 가장 타락한 사용법은 ①상대방을 아이로 취급하면서 상대방의 환상을 깨지 않으려는 태도이며, ②어떤 진리든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모두 폭력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즉 우리는 ①, ②의 태도와 발상을 간직한 채 이슬람을 ‘아이’ 취급하고, 그들에 대한 이의 제기를 ‘폭력’ 행사나 되는 양 자기 검열을 해온 것이 아닌가? 과격하게 말해, 비판이 필요한 근본적 차이를 문화적 차이와 생활 방식의 차이로 변질시키고, 미소 띤 얼굴로 표현의 올바름에만 신경을 써온 허다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타락한 관용이 풍자만화가들을 참극으로 내몬 게 아닌가?
결코 이슬람은 약자가 아니다. 이슬람은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한 숫자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다. 이슬람은 고령화되어가는 다른 종교와 달리 가장 많은 20대 신도를 가졌다. 서구로 유입되는 이민의 대다수도 무슬림이다. 이슬람은 서구를 향해 자신을 아이 취급하고 예외로 다루어 달라고 더는 징징거리지 말아야 한다. 이슬람이 진정 유서 깊은 역사와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들이 길러온 문화의 힘으로 풍자와 조롱에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