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 있는 이야기
날씨가 따뜻해지니 겨우내 집 구석구석 쌓인 먼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차례차례 대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벌써 바쁘다.
청소를 하기 전 먼저 시작하는 것은 물건 정리다. 불필요한 물건들이야말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집을 더럽히는, 정리하고 청소하는 데 손이 많이 가게 해 노력과 시간을 잡아먹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버린다고 버리고, 가능한 한 적게 산다고 노력한 것 같은데 집안 곳곳엔 어느새 이런저런 물건들이 쌓여 있다.
중형 크기(40평대 후반)의 아파트에 살다가, 마당 포함한 면적이 살던 아파트의 반에 불과한 한옥(20평대 초반)으로 이사한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당을 빼면 주거공간은 더 작기 때문에 갖고 있던 짐의 무려 90%를 버려야만 한옥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막상 살아보니 버린 90%의 짐 중에 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이분은 그 후 고정된 형태로 된 물건은 추가로 집에 들이지 않기로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지인들이 집에 놀러 올 때도 물건을 선물로 갖고 오는 것을 ‘금지’시켰다. 선물로 허락된 품목은 단 하나였는데, 그건 바로 ‘먹어 없앨 수 있는’ 음식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조선의 아름다움’은 ‘빼고, 빼고, 빼고 나서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라고 묘사한 부분이 있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예전에 봤던 한 전시가 떠올랐다. 조선시대 선비의 방과 당시 가구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전시였다. 선비의 방을 재현한 공간에는 몇 개의 가구와 붓글씨 도구 등 실용적인 물건들만 있고, 장식을 위한 장식품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네모반듯한 가구의 단순함과 벽에 걸린 붓들의 가지런한 모습, 창의 격자무늬 등이 그 자체로 정결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공간을 꾸미는 것은 아름다운 장식품과 꽃을 놓거나 그림을 걸어야 한다고 습관적으로 생각했던 내게 그 공간은 충격이었다. 인위적인 장식을 하지 않고, 꼭 필요한 물건을 최소한으로 갖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지극한 아름다움이 생긴다는 것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이런 경험을 한 이후로 나는 내가 쓰는 공간에 가능한 한 장식품을 두지 않는다. 있는 것은 없애고 새로 사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때, 사용하기도 편리하고 디자인 면에서도 아름다운 것을 사려고 신경을 쓴다. 공간을 비워놓을수록 간결하고 시원한 여백의 미가 생기고 그로 인해 정신도 맑아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좋고 아름다운 물건을 더 많이 소유하고, 그 물건들을 쓰고 살 더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돼버린 ‘덧셈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덧셈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욕심은 채울수록 커지고, ‘백만장자는 백만 가지의 걱정이 있다’고, 갖고 있는 게 많을수록 신경 쓸 일도 많아진다.
덧셈 대신 뺄셈의 생활을 해보면 어떨까. 더는 뺄 것이 없는 상태까지 빼고 또 빼고. 뺄셈을 하다 보면 그다지 필요도 없는 물건에 그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을 썼다는 생각에 덧셈에 대한 욕구가 뚝 떨어진다. 그다음에 생기는 것은 물건이 아닌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다.
휴리(심플라이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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