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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교회에 ‘못 나가는’ 이들을 위하여

등록 2015-04-28 19:44수정 2015-10-28 15:44

쉼과 깸
희선이는 주일날 교회에 못 나간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데 일요일에도 쉴 수 없다. 아버지가 실직하기 전에는 달랐다. 예배도 잘 드리고 주일학교 교사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설교 들을 시간에 빵 상자를 들어야 하고, 헌금 드릴 시간에 손님에게 잔돈을 드려야 한다. 사장님은 일요일에는 출근하지 않는다. 주일성수 하러 교회에 가시기 때문이다. 나는 사정도 모른 채 청년부 회장인데도 교회에 안 나온다고 서운했었다. 새벽기도 마치고 돌아오던 어느 겨울 날, 어스름 속에 웅크린 채 언 손 불어가며 셔터 문을 열던 뒷모습을 마주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명자씨도 오랫동안 교회에 못 나갔었다. 졸지에 세 딸과 함께 길바닥에 나앉았기 때문이다. 일산 덕이동에서 가구점을 했는데, 땅주인이 매장 터를 재개발 시행사에 팔아넘기고 세입자 몫인 보상금을 자기가 챙겨갔다. 법원마저 땅주인의 편을 들자, 보상을 요구하며 매장 자리 길바닥에 천막을 짓고 세 딸과 함께 철거깡패들에게 시달리며 살아온 지 어언 7년이다. 다니던 교회는 투쟁하는 철거민 가족을 불편하게 여겼고, 결국 수년간 강대상 꽃꽂이 봉사를 했던 정든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들 사정도 비슷하다. 희생자 부모 중 76명이 기독교인인데 이 중 80%는 교회를 떠났단다. 결국 목사들이 문제였다. 설교 시간에 얼토당토않은 정부의 주장을 하나님 말씀인 양 함부로 지껄여서 자식 잃은 부모 가슴에 생채기를 낸 것이다. 이제 그만하고 신앙생활이나 열심히 하라는 위로 같지 않은 위로는 자식이 죽은 이유만이라도 알려 달라며 절규하는 부모에게는 모욕으로 들렸다. 이 지경이면 유가족이 교회를 떠난 게 아니라, 교회가 유가족을 내쫓은 것일 테다.

우리 주변에는 교회에 “안 나가”는 게 아니라 “못 나가”는 이들이 많다. 노래방 도우미라는 사실이 드러난 집사, 장로인 남편이 바람피워 이혼했는데 교인들의 수군거림을 못 버티고 떠난 권사, 동성애자라고 밝혔다가 쓰레기 취급 받게 된 청년, 열심히 씻어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노숙자 아저씨, 이들은 자기 교회, 보통 교회, 평범한 교회에는 나갈 수 없는 우리의 이웃이다.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 예수다. 당대 권력의 중심 예루살렘이 아닌 변방 촌구석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 고아, 창녀, 병자 등 고난받는 민중과 항상 함께 살았던 메시아다. 예수는 당시 로마제국과 이에 야합한 타락한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외면당하고, 고통당하던 사람들과 같은 길을 갔다.

남오성 목사(일산 은혜교회)
남오성 목사(일산 은혜교회)
지금 교회들은 “잘 나가”는 교인에게 관심이 많다. 성공하여 세상에서 잘나가고, 안 빠지고 교회에도 잘 나가는 교인을 목사는 애지중지한다. 그리고 “안 나가”는 이들에게도 관심이 많다. 신앙에 대한 냉담이나 교회의 부패로 인한 마음의 상처 때문에 교회에 안 나가는 이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못 나가”는 이웃을 위한 교회는 흔치 않다. 성공 못해 세상에서 못 나가고, 소외되어 교회에도 못 나가는 이들이 교회로 들어올 수 있게 하려고 별로 애쓰는 것 같지 않아 나 자신부터 부끄럽다. 예수는 못 나가는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말이다.

남오성 목사(일산 은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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