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안토니오 몬시뇰
임진각 근처 ‘파티마 평화의 성당’ 지은 독일인 하 안토니오 몬시뇰
하 안토니오 몬시뇰(93·사진)은 1958년 선교사로 한국에 건너와 빈민구제와 교육사업에 평생을 바쳐온 파란 눈의 독일인 신부다. 가톨릭교회 국제단체인 ‘파티마의 세계사도직’(푸른 군대) 한국본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최근 한국에서 오랜 숙원을 이뤘다. 지난 6일 임진각에서 1.2㎞ 떨어진 곳에 남북통일과 평화를 기원하는 ‘파티마 평화의 성당’을 완공한 것이다.
북한에서 선교를 했던 독일인 신부의 영향을 받아 한국행을 결심한 그는 57년 전 화물선에 몸을 싣고 부산항에 도착해, 남구 우암동 동항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 머나먼 이국땅에서 사제 활동을 시작했다.
“청년 시절 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 4년간 포로 생활을 하면서 몸이 약해져 신부가 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죠. 그래도 신부의 뜻을 포기하지 않은 채 3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북한에서 선교하고 돌아온 독일인 신부님이 한국의 실정에 관해 알려줬습니다. 그때 한국에 대해 처음 알게 됐고 ‘나도 한국으로 가자’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독일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3개월 만에 한국을 향한 그는 비료 운반선을 타고 오면서 ‘나도 한국을 위해서 비료가 되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 결심대로 그는 평생 빈민, 장애인 등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헌신해왔으며, 69년 한독여자실업학교(현 부산문화여고)를 설립하는 등 교육에도 힘써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에는 명예 고위 성직자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그는 “74년 5월19일 임진각에서 ‘세계 평화와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한 미사를 처음으로 봉헌한 이후 지금까지 매년 5월 이곳에서 미사를 드려왔다”며 “처음부터 ‘여기에 기도의 성당을 짓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제가 한국으로 떠나올 때 독일은 동서로 갈라져 있었고, 한국도 남북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이후 독일은 통일됐지만 한국은 여전히 갈라져 있고, 특히 북한의 주민들이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심한 박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늘 마음 아팠습니다. 이런 까닭에 여러 가지 기도운동을 해왔고 이 성당도 짓게 됐습니다.”
하지만 성당 건립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83년 한 신자의 기부금에 힘입어 북한과 가까운 곳에 땅을 샀지만, 군에서 군사지역이라는 이유로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그 땅을 포기하고 현재의 터를 다시 구입했고, 2013년 국방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가 86년 설립한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그는 전했다.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강력한 무기와 막대한 군사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에 의한 정신적인 무장이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파티마 평화의 성당’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기도의 발상지 구실을 할 것입니다. 또한 전세계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우리 성당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현재 회고록을 집필 중인 그는 “남북한 평화통일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며 “그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목적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또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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