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주변 임대가구 건축 바람
집주인들 “방 비워달라” 월세 뛰어 갈 곳은 없는데…
집주인들 “방 비워달라” 월세 뛰어 갈 곳은 없는데…
주한미군 기지의 이전·확장이 추진되는 경기 평택시 팽성읍 일대에 미군을 상대로 한 임대용 다가구 건축 바람이 불고 있다. 이 때문에 수십년 동안 사글세를 내고 쪽방 생활을 하던 기지촌 여성 노인들은 재건축 바람에 떠밀려날 형편이지만 월셋값도 올라,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일 팽성읍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기지(K-6) 정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쪽방 거리. 이곳에서 만난 배귀례(77)씨는 30살에 안정리에 들어와 미군들을 상대로 클럽에서 일한 ‘기지촌 여성’이다. 그는 “한달 전부터 주인이 ‘집을 헐고 빌딩을 짓는다’며 방을 내달라는데, 집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쪽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연탄을 쌓아둔 부엌 하나가 전부인 이곳에서 그는 월세 7만원을 내고 10년째 살아왔다. 현재 30만원의 영세민 지원비가 생활비의 전부인 배씨는 “미군기지가 이전해 온다고 한 뒤 시세가 올라 지금의 월세를 내고는 옮길 곳이 없다”고 말했다.
기지촌 여성 지원센터인 ‘햇살센터’가 안정리 ‘기지촌 여성 노인 주거실태’를 조사한 내용을 보면, 안정리 일대에 사는 기지촌 여성 노인 59명 가운데 34명이 평균 14만6천원짜리 월세 쪽방에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의 평균 월수입은 25만원이었으며, 전세를 사는 18명의 평균 전세금은 1052만원에 그쳤다.
반면 미군기지 확장·이전 바람과 함께 평택의 험프리스기지 주변은 지난해부터 미군을 대상으로 한 ‘렌털 하우스’ 신축 열풍이 불고 있다. 현재 100채 이상의 다가구 주택이 신축되거나 재건축됐고 덩달아 주변 전·월세도 크게 올랐다. 부동산업체들은 “2008년까지 미군 2만5천명, 미군무원 10만명이 전입하고 올해 수천명의 전입이 확정돼 임대수요가 는다”며 ‘2가구를 임대할 다가구 주택, 월 임대수입 650만원 보장’이란 매물 광고까지 내놓을 정도다.
우순덕 햇살센터 원장은 “한때는 ‘외화벌이’로 아픈 역사를 살아온 이들이 이제는 주한미군의 평택 재배치 계획과 맞물려 그나마 노년의 보금자리마저 잃을 처지”라며 “이들의 주거 및 생활안정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평택/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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