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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아이들이 저를 열심히 살게했어요”

등록 2006-06-27 21:14

결혼 않고 다섯아이 입양한 김점순 할머니
올해 일흔두살의 김점순씨는 경기 이천시에서는 ‘대모(큰어머니)’로 통한다.

인천에서 1남2녀의 막내로 태어나 1967년 이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1973년 이천군 초대 부녀복지계장을 지낸 그는 미혼의 몸으로 다섯 아이를 입양해 친자식만큼이나 정성껏 키워냈다.

첫아이를 입양한 것은 1976년. “당시에는 먹고살기 힘드니까 우리집 앞에 아이를 많이 버리고 갔어요. 눈이 하얗게 온 어느 겨울날에는 누가 문을 두들겨서 나가 보니 포대기에 아이가 담겨 있었어요.” 당시 7살이던 딸은 성장해 서울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결혼해 이제 어엿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업무차 방문한 보육원에서 김씨는 자신이 입양할 둘째와 셋째 딸을 만났다. “군청 복지아동계장으로 보육원 현장을 둘러보러 갔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고아원에 맡겨진 둘째와 셋째를 차례로 만났어요.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가 어찌나 눈에 밟히던지 그냥 돌아갈 수 없었어요.” 셋째 딸은 특히 성장하면서 속을 많이 아프게 했다. “언니들과 싸우고 예전 시설로 되돌아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편지를 쓰고 선물을 마련해 달래서 데려왔어요.”

길을 걷다가도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보면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상 초등학생이던 넷째와 다섯째는 손녀로 입양해 키웠다.

“넷째 아이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너무 연로해서 아이를 기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몇 번 만났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저와 떨어지기 싫다는데 별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또 “막내는 엄마가 있긴 했는데 너무 가난했어요. 길거리에서 만났는데 1년은 씻지 못해 꼴이 말이 아니었지요. 그때 든 생각이 넷도 기르는데 다섯은 못 기르랴고 생각했어요”

첫딸 입양 후 군청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이후 농협과 사회단체에서 활동해온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20평 남짓한 낡은 아파트 한 채와 신장병이다. 3년 전부터 신장 이상으로 1주일에 2번씩 투석치료를 받는 김씨는 “아이들이 스스로 큰 것이고 오히려 아이들 때문에 내가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는 7월11일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 ‘훌륭한 어머니’로 뽑혀 ‘제21회 경기도여성상’을 받는다.

수원/홍용덕 기자, 사진 이천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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