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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수용시설 ‘진화’ 했지만, 재소자 감시는 더 촘촘

등록 2006-11-21 19:42수정 2006-11-22 10:26

여주교도소 1.12평 독방의 내부. 양변기와 개수대가 들어서는 등 개선된 모습이나, 여전히 비좁아 보인다. 이재명 기자 <A href="mailto:miso@hani.co.kr">miso@hani.co.kr</A>
여주교도소 1.12평 독방의 내부. 양변기와 개수대가 들어서는 등 개선된 모습이나, 여전히 비좁아 보인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CCTV 818대 “숨을 곳은 없다”…독방 0.75평에서 1.12평으로
인권위 워크숍 여주교도소 가보니

닫혔던 교도소 문이 열렸다. 올 연말로 예정된 한국의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을 앞두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6일 경기 여주교도소에서 정부와 국제단체 관계자 등을 초청해 ‘고문방지 관련 수용시설 모니터링’을 위한 현장 워크숍을 벌인 것이다. <한겨레>는 언론사로서는 유일하게 이번 워크숍을 취재하며, 요즘 교도소의 내부는 어떤지 구석구석 살펴봤다. 편집자

‘수능 추위’가 몰아친 아침, 교도소에 도착하고 보니 서울보다 체감온도가 훨씬 낮다. 동행한 국가인권위 직원이 건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군대와 교도소는 바깥 세상보다 5℃쯤 낮죠.” 교도소가 대부분 산속 외딴곳에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심리적 위축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섰다. 정작 그곳엔 어둡고 침침한 이미지의 교도소는 없었다. 빛을 들이고자 건물 가운데 천창을 뚫어놓아 밝고 환했다. 방 630곳마다 작지 않은 창문과 난방 시설이 딸려 있었다. 형기 10년 이하의 초범 수감자가 주로 머무는 여주교도소는 2001년 문을 열었다. 시설도 그만큼 현대적이다.

교도관이 한웅큼의 열쇠꾸러미를 들고 감방 문을 여닫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출입카드와 비밀번호뿐이었다. 의원으로 등록한 병원시설에 전문의 2명과 공중보건의 3명이 상근한다. 치과도 있고 종교시설도 갖췄다. 컴퓨터 교육은 물론 자동차 정비 같은 직업 훈련을 하고, 원하는 사람은 교도소 옆에 딸린 작업장에 나가 돈을 벌 수도 있다. 이날 오전 80여명의 수감자는 자동차 운전대에 가죽을 씌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받는 일당은 1만원 정도 된다. 수형 성적이 좋은 사람은 교도소에서 가족과 전화통화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보니 그곳은 분명 감옥이었다. 5m의 높은 담장과 감시탑이 있고 곳곳에 철문과 교도관이 있다. 무엇보다 수감자를 스물네 시간 내내 감시할 수 있는 818대의 폐쇄회로티브이(CCTV) 카메라가 있다. 카메라는 종합상황실, 상황실, 수감자 방, 접견실 곳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교도관의 눈귀를 대신하고 있다. 교도관을 속일 수는 있지만 카메라 렌즈를 피할 수는 없다. 재소자는 먹고, 자고, 싸는 그 어떤 것도 온전히 혼자 누릴 수 없어 보였다.


감시자의 눈길이 드러나지 않을 때 공포는 더욱 커진다. 아마도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설계한 원형감옥 ‘판옵티콘’의 진화된 형태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여주교도소에서 한 수감자가 화상통화 장치를 이용해 먼 곳의 지인과 면회하고 있다. 이재명 기자 <A href="mailto:miso@hani.co.kr">miso@hani.co.kr</A>
여주교도소에서 한 수감자가 화상통화 장치를 이용해 먼 곳의 지인과 면회하고 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교도소 쪽은 “자살과 자해를 막고 부족한 교도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최신식 보안시설”이라며 자랑했다. 그러자 수많은 나라의 구금시설을 방문해 봤다는 국제고문방지협회(APT) 프로그램 총괄책임자 바버라 버네스는 “이렇게 많은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본적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인권위는 2004년 10월 교도소의 감시카메라 설치는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수감자들이 머무는 방은 여전히 좁았다. 여주교도소의 독방 넓이는 1.12평. 원래 0.75평이었으나 2004년 2월 인권위 권고로 늘어난 게 이 정도다. 키가 180㎝쯤 되는 워크숍 참가자가 독방에 드러누워 보았다. 발목이 문턱 밖으로 삐죽 나온다. 방 한쪽 벽엔 수세식 변기가 설치돼 있어 방이 더욱 비좁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이런 독방 수요는 점차 늘어난단다. 전체 수감자 방의 45%에 이르는 284개가 독방이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가족’이 한방에 머물던 예전과 달리 각자 방을 쓰는 문화로 바뀌면서 여럿이 함께 지내는 걸 불편해하는 수감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간혹 독방에 들어가고자 일부러 징계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몇 푼 안 되는 영치금도 받지 못하는 수감자는 같은 방 동료에게 간식거리라도 신세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독방행을 자처하기도 한다. 바깥세상의 빈부격차는 감옥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었다.

국가인권위 직원들이 교도소 참관 뒤 내놓은 개선권고 의견
국가인권위 직원들이 교도소 참관 뒤 내놓은 개선권고 의견
이곳에서 한 사람 식사에 들어가는 돈은 하루 2600원. 한 끼니에 900원이니 반찬이 소박할 수밖에 없다. 이날 나온 점심은 보리가 반쯤 섞인 밥과 김칫국, 연두부와 배추김치가 전부였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요즘은 양이 부족해 배를 굶주리는 경우는 없다. 여주교도소에선 각자 방이 아닌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하는데, 배식 전에 교도소장이 직접 음식 상태를 점검했다. 영치금으로 김과 멸치볶음, 김치, 무말랭이 따위의 이른바 ‘사제’도 구입해 먹을 수 있다.

두 시간 남짓 담장 안의 세상을 둘러본 뒤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턱에 닿는 바람은 여전히 차가운데 이상하게도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현대적 시설로 탈바꿈했지만 교도소는 여전히 추운 곳이었다. 여주/글·사진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 판옵티콘이란? = 18세기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고안한 원형감옥을 말한다. 중앙에 둥그런 모양의 높은 감시탑을 두고 원 둘레를 따라 감방을 둬 감시하기 쉽도록 했다. 또 감시탑은 어둡게 하고 감방은 밝게 해 죄수들은 교도관들이 어디를 감시하는지 알 수 없도록 돼 있다. 1975년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판옵티콘을 인용해, 이런 감시 체계가 근대 권력의 전형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 고문방지협약의정서란? = 1984년 12월 제39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고문방지협약’(고문 및 그밖의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에 우리나라는 지난 1995년 2월 가입했다.

나아가 유엔은 고문 예방을 위해 독립적인 국가예방기구를 설치하고 각종 구금시설을 정기적으로 방문 조사하도록 하는 내용의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를 채택했다. 이 의정서는 지난 6월 발효됐다. 현재 29개국이 선택의정서를 비준했으며, 우리나라는 연말까지 비준할 계획이다.

선택의정서를 비준하면 1년 안에 국가예방기구를 지정·설치해야 한다. 이 기구는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인적·기능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하며 경찰서, 교도소, 망명신청자 보호시설, 정신병원 등 모든 종류의 구금장소에 제한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선택의정서 비준에 따른 국가예방기구 구실을 인권위가 수행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이를 위한 준비로 이번 국제 워크숍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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