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별 장애인 현황
정신지체 누나 둔 인턴기자 ‘장애인가족’취재
무료시설 이용은 ‘그림의 떡’…기약없이 대기
무료시설 이용은 ‘그림의 떡’…기약없이 대기
제게 큰누나는 아직도 ‘○○ 언니’입니다. 어린 제가 작은누나를 따라 “언니, 언니!” 하고 부르면, 큰누나는 얼굴을 무너뜨리며 환하게 웃곤 했습니다. 그 얼굴이 좋아 저는 27살이 된 지금까지도 큰누나를 “언니”라 부릅니다. 혹여 “누나”라고 부를라치면 저를 낯설어하는 큰누나는 정신지체 1급 장애인입니다.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나서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91년, 아버지는 큰누나를 한 장애인 생활시설에 맡겼습니다. 사실 시설 문앞에 누나를 놔두고 왔다는 게 더 정확한 말입니다. 누나를 무연고자로 처리해 입소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병원에서도 포기하라고 하는 누나를 살리려고 부모님은 전셋돈을 빼고 빚까지 얻었습니다. 자식들 먹여 살리자면 두 분 모두 일을 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밥도 못 먹는 큰누나를 돌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무료 장애인 생활시설은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나 무연고자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매달 50만원을 내야 하는 민간시설에 맡길 수도 없었습니다. 누나를 무연고자로 만들어 무료 장애인 생활시설에 들여보내는 게 우리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누나를 요양원 문앞에 두고 오던 날, 어머니는 참 많이도 우셨습니다. 지금도 어머니는 가끔 눈물을 보이십니다. 큰누나 생각이 날 때입니다. 부모님은 보름에 한차례씩 누나를 집에 데려옵니다. ‘아무리 생활에 힘들어도 누나를 잊지 말자’고 서로 약속했습니다. 빵이며 피자며 반찬이 풍성하게 차려진 날은 바로 누나가 오는 날입니다.
그렇게 16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큰누나 같은 중증 장애인들이 갈 곳은 부족합니다. 누군가 항상 보살펴줘야 하는 장애등급 2급 이상 장애인을 중증 장애인이라고 부릅니다. 전체 장애인 200만여명 가운데 54만여명입니다. 이들이 생활할 수 있는 무료 생활시설은 턱없이 모자랍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시설 288곳의 정원을 모두 합해도 2만여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차상위 계층이나 중산층 가정은 이런 시설에 접근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중증 장애가 있는 자녀 때문에 고통을 겪는 가정은 요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누가 돌보나=차상위 계층인 안아무개(58)씨는 작은 아들이 자폐아입니다. 정신지체 1급으로, 한시도 떼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장애인 무료 생활시설에 들어가기 위해 지난 1월 등록했지만, 대기자 순위가 120번이라고 합니다. 7개월이 지나도록 연락도 없고 자주 자리가 나는 것도 아니어서, 안씨는 “이름만 걸어 놓았지 입소하는 것은 포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안씨 가족이 모두 일을 하기 때문에 현재 작은 아들은 한달 30만원을 내고 주간 보호시설에 보내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낮에만 맡아주는 시설인데, 돈도 부담이지만 안씨 자신의 사후가 걱정이라고 합니다. 안씨는 “부모가 살아있을 때는 어떻게라도 할 텐데, 우리 내외가 가고 나면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쉽니다.
이건영(48)씨도 근심이 많습니다. 조카가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보호시설에 들어가지 못해 형 내외가 밖에도 못 나가고 돌본답니다. 이씨 형은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을 다 줄 테니 아이를 좀 맡아다오”라고 한다는데, 치매와 노환이 있는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이씨는 “조카까지 데리고 있으면 아내도 나도 바깥 생활 자체를 못 할 게 걱정”이랍니다. 그는 “시설 크게 지어놓고 수용하는 게 어려우면 장애인 가정 부모들끼리 돌아가며 아이를 맡아 볼 수 있는 장소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임마누엘의 집 이혜림 사회복지사는 “정원이 60명인데 20~30명이 대기자로 기다리고 있다”며 “주로 이곳에 있던 분이 돌아가시면 그 자리에 대기자가 들어오는데, 그런 인원은 한해 한두명 정도밖에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생활시설 현황=장애인 주거시설은 △기초생활수급권자나 무연고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료시설 △차상위 계층을 위한 실비시설 △사설 보호시설로 나뉩니다. 차상위계층은 무료 생활시설 가운데 여건이 되는 시설에 한해 정원의 30%까지 입소할 수 있는데, 20여만원의 실비를 내야 합니다. 사설 보호시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달 100여만원을 내야합니다. 형편이 좋지 않는 가정은 어떻게든 무료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싶어하지만,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을 수용하기에도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차상위계층 이상의 장애인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 재정을 지원하는 장애인 생활시설은 모두 35곳입니다. 모두 합하면 3400여명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 시설에서 실비를 내며 살고 있는 차상위계층 장애인은 378명뿐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정원의 11%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초생활수급권자 외에는 아예 받지 않는 시설도 17곳이나 됩니다.
순수하게 차상위 계층을 위한 실비시설은 전국에 11곳 뿐입니다. 한 시설당 대략 4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올해 6곳을 더 완공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수요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입니다.
차상위계층을 꺼리는 이유=장애인 보호시설에서도 차상위계층을 꺼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경기도 ㄱ주거시설의 김진 재활교사는 재정부담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장애인은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한차례 병원에 다녀오면 4만원을 내야합니다.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은 정부지원금으로 2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차상위계층 이상은 시설에서 모두 부담해야 합니다. 김 교사는 “치료를 한달에 4차례만 받아도 16만원인데, 여기에 식비와 교통비를 더하면 23만원을 훌쩍 넘는다”고 말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재활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송인수 사무관도 “차상위계층 장애인이 실비로 내는 20만원은 기초생활수급권자에 지원되는 정부보조금보다 적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노원구청에서 장애인 생활시설을 담당하고 있는 심재순씨도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을 위한 시설도 모자라는 상황에서 차상위계층에게 만족스런 지원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버려지는 아이들=21세기에 들어서도 우리 사회엔 장애인 생활시설 문 앞에 남몰래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름 밝히길 원치 않은 한국복지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 직원은 “요즘도 장애인 생활시설 앞에서 발견되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실종 신고된 어린이의 발견 장소와 시기를 알려주는 한국복지재단 누리집에는 전국 각지의 장애인 생활시설 앞에서 발견된 아이들의 사연이 2000년 이후로만 30여건 올라와 있습니다.
누나를 떼어놓고 돌아오던 길에 눈물 흘렸던 일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16년이나 지났는데 말입니다. 물론 그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대학교 졸업반이 된 만큼요. 보건복지부에서는 복지국가 건설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줬고, 제 누나같은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제가 느꼈던 슬픔을 똑같이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누나를 두고 온 그 날이 되면 제 마음이 아린 건지 모르겠습니다.
김현우 인턴기자(한국외대 신문방송 4)
중증 장애인은 54만명 무료시설 정원은 2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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