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수 근로복지공단 요양팀장이 산업재해를 입은 재중동포 이주노동자에게 장애등급 신청 절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 제공
장애인협회 가짜 명함 내밀고 “장애등급 높여주겠다” 돈챙겨
2005년 한국에 들어온 재중동포 김경수(36)씨는 2006년 11월 경기 용인의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크레인에서 떨어져 왼쪽 눈을 잃고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산업재해로 인정돼 세 차례 수술을 받은 뒤 장애등급 신청을 준비하던 김씨에게 지난해 8월 한 브로커가 찾아왔다. 그는 장애등급을 높여주겠다며 착수금 350만원을 요구했다. 김씨는 “장애등급 신청 절차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브로커가 ‘산재장애인협회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도와주겠다’고 접근해 별다른 의심 없이 돈을 줬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반년 가까이 지났으나 김씨는 아직까지 장애등급 신청조차 하지 못했고, 지난 2월부터는 브로커와 연락도 끊겼다.
1998년 입국한 재중동포 이철(40)씨도 김씨와 같은 수법으로 당했다. 지난해 7월 경기 부천의 한 주상복합건물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3층 높이에서 추락해 골반과 갈비뼈를 다친 이씨는 두달여 뒤 장애등급을 높여주겠다며 접근한 브로커에게 270만원을 떼였다.
이처럼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에게 장애등급을 높여주겠다며 접근해 돈을 챙겨 달아나는 사기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피해자들은 모두 ‘서울시 산업재해장애인협회 민원2실장 장아무개’란 가짜 명함을 들고 다니는 한 사람에게 당했다.
서울시 산업재해장애인협회에는 최근 한달 사이 장씨를 찾는 전화가 줄을 이어 협회도 난처하게 되었다. 이 협회는 비영리 민간단체로, 산재 환자들의 장애등급 신청 등을 도와주고 있다. 안기훈 대표는 “장씨가 지난해 7월부터 이곳에서 일을 했으나 업무 처리가 미숙해 한달 만에 그만뒀다”며 “피해 상황을 파악한 뒤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씨로부터 모두 1천만원 가량 사기를 당한 재중동포 산재 환자 네 명은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장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길수 근로복지공단 요양팀장은 “장애등급에 따라 보상비가 달라, 등급을 높여준다는 말에 쉽게 현혹돼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도와주겠다고 접근한 뒤 돈을 요구하는 이들을 보면 즉각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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