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한국에 있는데…국외추방
한국국적 부모 둔 중국인
귀화신체검사서 날벼락
법적 강제규정 없지만
실제론 강제출국 관행
한국국적 부모 둔 중국인
귀화신체검사서 날벼락
법적 강제규정 없지만
실제론 강제출국 관행
중국 지린성 출신인 허인성(32·가명)씨는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데도 한국 땅에 머물 수 없다. 지난해 5월 출입국관리사무소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이유로 허씨에게 출국명령을 내렸다.
허씨는 1999년 베이징 어언문화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현지에서 일하다 2002년 재혼한 어머니가 살고 있는 한국으로 왔다. 재중동포인 허씨의 어머니는 94년 한국인과 결혼해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허씨는 지난해 3월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얻었고,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한 특별귀화 신청도 준비했다.
날벼락이 떨어진 건 지난해 5월. 서울 봉천동 보건소로부터 방문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찾아가니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식이 기다렸다. 허씨에게는 “실신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허씨는 그날로 서울 마포에 있는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보내졌다. 한평반 남짓한 독방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폐소공포증이 있다는 허씨의 호소는 무시됐다. 불치병에 걸렸다는 충격과 닫힌 공간의 공포가 허씨의 가슴을 짓눌렀다. 부모가 보호소를 찾아 석방을 호소했지만, 보호소는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허씨는 결국 구금 엿새째 되던 날 “5월20일까지 중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풀려났다.
그러나 가족도, 직장도 없는 중국에서 투병생활을 하는 건 허씨에게 “참혹한 형벌”이었다. 수소문 끝에 지난해 7월 국가를 상대로 출국명령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질병관리본부의 통계를 보면, 88년부터 지난해까지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인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된 외국인 647명 가운데 521명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국을 떠났다. 현재 조사가 진행되는 경우를 포함해 국내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은 56명에 지나지 않는다.
출입국관리법은 출입국관리사무소장 등의 재량으로 전염병에 걸리거나 마약에 중독된 외국인을 강제 퇴거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에이즈 판정=강제출국’이 공식처럼 적용되고 있다. 임진택 법무부 조사집행과 사무관은 “법에서 명시된 대로 개별 전염병 환자의 위험성에 따라 출국이나 입국금지의 판단을 내리지만, 한국인 배우자를 둔 외국인은 예외적으로 체류를 허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씨의 소송을 맡은 장서연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는 “전염병예방법에도 에이즈는 전염성이 약한 3군에 속해있고, 유엔의 2006년 ‘에이즈와 인권에 관한 국제 가이드라인’도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만을 가지고 이동 및 거주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차별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고 말했다.
김훈수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사업국장은 “에이즈에 걸린 한명의 외국인을 추방시키면 당장 작은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외국인 감염인들이 익명 속으로 숨어버리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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