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수용시설 ‘부재자 투표소’ 설치 외면
병원·수용시설 ‘부재자 투표소’ 설치 외면
알코올 중독으로 충북의 한 정신병원에서 8개월째 치료를 받고 있는 남아무개(46)씨는 지난 대선 때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번 총선 땐 꼭 ‘한 표’를 행사하겠다고 마음먹고 연고지인 인천 선거관리위원회에 부재자신고를 했다. 하지만 병원 쪽은 그의 ‘외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폐쇄병동이기 때문이다.
알코올중독 등 폐쇄병동 환자 권리 요구에 병원선 ‘비아냥’
대형기관 투표소 설치 극소수 선관위서도 기관장 의지탓만 남씨는 “그러면 부재자투표소를 마련해달라”고 병원 쪽에 요청했다. 하지만 “지금껏 이 병원 환자중에 투표를 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비아냥만 들어야 했다. 정식으로 ‘투표할 권리’를 주장했더니 “보호자 요청이 있어야 협조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씨는 정상적인 의사 판단이 불가능한 ‘환자’라는 이유에서다. 남씨는 “내 권리를 찾겠다는데 알코올 중독을 마치 금치산자처럼 취급하는 병원 쪽 태도에 모멸감을 느꼈다”며 분개했다. 알코올 중독자나 정신지체 장애인 가운데 병원 등 각종 기관·시설 수용자 대다수에게 ‘유권자의 권리’는 남의 얘기다. 물론 길은 열려 있다. 병원·요양소 등에 장기간 살면서 거동할 수 없는 이들은 병원장의 승인 아래 ‘거소 투표’를 할 수 있다. 병원에서 기표한 투표 용지를 우편으로 보내면 된다. 거동이 가능한 사람은 부재자신고를 한 뒤 인근 지역 투표소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남씨의 경우에서 보듯 기관·시설 수용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은종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총선연대 팀장은 “기관·시설에 있는 분들 중 거소투표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부재자투표를 하고 싶어도 밖으로 나가기 힘들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 대규모 시설·기관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설·기관 수용자들이 사실상 투표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규모가 큰 기관·시설도 부재자투표소 설치에 적극적이지 않다. 병원·요양소 등은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대선 때 전국의 병·의원 가운데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한 곳은 17곳에 지나지 않았고, 요양소·수용소는 39곳에 그쳤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병원들이 부재자투표소 설치에 소극적이거나,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투표소 설치 요청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상담이 적잖게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박정엽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기획팀장은 “선거때마다 기관·시설의 부재자투표 활성화 방안을 선관위에 요청하고 있으나 이번 총선에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며 “나라에서 기관·시설 수용자들의 헌법상 권리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대형기관 투표소 설치 극소수 선관위서도 기관장 의지탓만 남씨는 “그러면 부재자투표소를 마련해달라”고 병원 쪽에 요청했다. 하지만 “지금껏 이 병원 환자중에 투표를 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비아냥만 들어야 했다. 정식으로 ‘투표할 권리’를 주장했더니 “보호자 요청이 있어야 협조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씨는 정상적인 의사 판단이 불가능한 ‘환자’라는 이유에서다. 남씨는 “내 권리를 찾겠다는데 알코올 중독을 마치 금치산자처럼 취급하는 병원 쪽 태도에 모멸감을 느꼈다”며 분개했다. 알코올 중독자나 정신지체 장애인 가운데 병원 등 각종 기관·시설 수용자 대다수에게 ‘유권자의 권리’는 남의 얘기다. 물론 길은 열려 있다. 병원·요양소 등에 장기간 살면서 거동할 수 없는 이들은 병원장의 승인 아래 ‘거소 투표’를 할 수 있다. 병원에서 기표한 투표 용지를 우편으로 보내면 된다. 거동이 가능한 사람은 부재자신고를 한 뒤 인근 지역 투표소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남씨의 경우에서 보듯 기관·시설 수용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은종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총선연대 팀장은 “기관·시설에 있는 분들 중 거소투표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부재자투표를 하고 싶어도 밖으로 나가기 힘들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 대규모 시설·기관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설·기관 수용자들이 사실상 투표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규모가 큰 기관·시설도 부재자투표소 설치에 적극적이지 않다. 병원·요양소 등은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대선 때 전국의 병·의원 가운데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한 곳은 17곳에 지나지 않았고, 요양소·수용소는 39곳에 그쳤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병원들이 부재자투표소 설치에 소극적이거나,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투표소 설치 요청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상담이 적잖게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박정엽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기획팀장은 “선거때마다 기관·시설의 부재자투표 활성화 방안을 선관위에 요청하고 있으나 이번 총선에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며 “나라에서 기관·시설 수용자들의 헌법상 권리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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