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죽음도 억울하지만 `술 한잔 마시고 쓰러져 죽었다'고 덮으려고 한다면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의 존재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요."
간첩 조작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받고 후유증에 시달렸던 노동운동가의 사망이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없다는 결정이 연거푸 내려져 유족들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4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등에 따르면 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고(故) 서의석씨를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로 인정해 달라는 유족들의 재심 청구에 대해 찬성 4명, 반대 4명, 기권 1명으로 불인정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0월에도 위원회는 서씨의 사망이 민주화운동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충격을 받아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노동운동에 투신한 서씨는 1987년 이른바 `반미구국민족민주전선' 간첩 조작사건에 연루돼 안기부에 끌려가 15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고 후유증에 시달리던 중 1991년 5월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한 뒤 갑자기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져 두개골 골절로 숨을 거뒀다.
위원회는 이같은 서씨의 경력을 인정하면서도 직접적인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저녁식사 때 술을 마신 뒤 넘어진 것이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에 따른 고문 후유증과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서씨가 숨진 것은 단지 술에 취해 넘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와 유족들은 입을 모은다.
당시 서씨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이모씨는 "5~6명이 저녁을 먹으면서 1ℓ짜리 막걸리 3병을 나눠 마셨다"고 진술했는데 서씨의 주량이 소주 반 병(고문 전에는 소주 한 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날 마신 술만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숨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유족들은 주장했다.
유족들은 재심 청구서에서 "관련자(서씨)의 성별, 몸무게, 음주량, 경과시간 등을 고려해보면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는 0.036% 내외로 추정된다. 이 정도 음주 수치만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은 의학적으로 보편적인 인과관계라고 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서씨는 1988년 4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같은해 7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병원 진료의뢰서 기록에 따르면 "똑바로 있으면 두 다리에 힘이 없어져서 주저앉게 된다"고 자신의 증세를 호소한 바 있다. 광주 이민오외과의 이민오 원장은 사망의견서에서 "서씨는 고문 피해 후 여러 차례에 걸쳐 하지에 힘이 빠지고 갑자기 주저앉은 경우가 있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한 공황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순간적 어지럼증을 일으킨 것으로 생각된다"며 고문이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도 "서씨 사망의 계기가 된 `의식을 잃고 갑자가 쓰러진 증상'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라며 "여러가지 원인을 고려할 때 서씨의 직접 사인인 `경막상 및 경막하 혈종'은 단 한 번의 쓰러짐으로 인한 뇌출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된 쓰러짐과 그때 생긴 출혈이 누적된 결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문 사건 이후 공공근로 등으로 어렵게 살아온 유족들은 민주화운동 사망에 따른 보상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씨의 아내 조경식(52.여)씨는 "이제 희망이 없다. 서류를 만드느라 여간 힘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결과가 나오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라며 "이제 행정소송밖엔 방법이 없는데 소송 비용 등의 문제가 있어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강건택 김선호 기자 firstcircle@yna.co.kr (서울=연합뉴스)
유족들은 재심 청구서에서 "관련자(서씨)의 성별, 몸무게, 음주량, 경과시간 등을 고려해보면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는 0.036% 내외로 추정된다. 이 정도 음주 수치만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은 의학적으로 보편적인 인과관계라고 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서씨는 1988년 4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같은해 7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병원 진료의뢰서 기록에 따르면 "똑바로 있으면 두 다리에 힘이 없어져서 주저앉게 된다"고 자신의 증세를 호소한 바 있다. 광주 이민오외과의 이민오 원장은 사망의견서에서 "서씨는 고문 피해 후 여러 차례에 걸쳐 하지에 힘이 빠지고 갑자기 주저앉은 경우가 있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한 공황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순간적 어지럼증을 일으킨 것으로 생각된다"며 고문이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도 "서씨 사망의 계기가 된 `의식을 잃고 갑자가 쓰러진 증상'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라며 "여러가지 원인을 고려할 때 서씨의 직접 사인인 `경막상 및 경막하 혈종'은 단 한 번의 쓰러짐으로 인한 뇌출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된 쓰러짐과 그때 생긴 출혈이 누적된 결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문 사건 이후 공공근로 등으로 어렵게 살아온 유족들은 민주화운동 사망에 따른 보상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씨의 아내 조경식(52.여)씨는 "이제 희망이 없다. 서류를 만드느라 여간 힘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결과가 나오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라며 "이제 행정소송밖엔 방법이 없는데 소송 비용 등의 문제가 있어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강건택 김선호 기자 firstcircl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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