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철거를 앞두고 있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 뉴타운 지역 골목길에서 종이 상자를 든 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불황의 겨울…벼랑 몰린 서민] ③ 주거불안 시달리는 빈곤층
‘노가다’ 일감 부족한데다 고철수집 돈안돼
일반 서민들도 수입 줄어 전셋값 ‘발동동’
‘노가다’ 일감 부족한데다 고철수집 돈안돼
일반 서민들도 수입 줄어 전셋값 ‘발동동’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반지하방에서 지난 11일 만난 유상진(56)씨는 꼬깃꼬깃 접힌 만원짜리 8장을 쥐고 달력을 쳐다봤다. 이달 중순까지 월세 13만원을 내야 하는데, 남은 시간 동안 부족한 5만원을 채울 방도가 없다고 했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노가다’ 일감을 얻어 생활해 온 유씨는 건설경기 침체로 제대로 일을 구하지 못했다. 일자리가 부족하니 젊은 사람들한테 밀려 “써주는 데가 없었고”, 결국 석 달 전부터 고철·고물 수집으로 생계수단을 바꿨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기 한파를 피해 가진 못했다. 철강업체들이 최근 생산을 줄이면서 고철값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몇 달 새 놋쇠가 1㎏에 6000원에서 1500원으로, 쇠붙이는 350원에서 40원으로 뚝 떨어졌다”며 “한 리어카를 채워봐야 4천원 정도라, 하루 두 끼를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해도 부족한 월세를 채우기가 힘겹다”고 하소연했다. 유씨는 8년 전 작은 공장에 다니다 중풍으로 쓰러져 입원했다. 일을 하는 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일자리를 잃자 아내와 두 딸은 연락이 끊겼고, 그는 서울에서 월세가 가장 싸다는 동자동으로 들어왔다.
유씨의 이웃 김아무개(60)씨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찬바람만 불면 방에 누워 있어야 하는 아내와 둘이 산다. 김씨는 “이번달 월세 15만원을 지난 8일 냈는데, 다음달엔 자신이 없다”고 했다. 전봇대 전단지를 떼는 공공근로로 월 60여만원을 벌던 김씨는 지난 6월 당뇨로 인한 어지럼증으로 쓰러져 왼쪽 팔이 부러졌다. 지난달 27일 퇴원해보니 공공근로 신청은 이미 내년 1월까지 접수가 끝나 있었다. 김씨는 “동자동에서도 쫓겨나면 다음 단계는 노숙인데, 둘다 몸이 성치 않아 갈 데가 …”라며 말끝을 흐렸다.
경기침체의 여파가 저소득층의 주거권을 위협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집값과 전·월세값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제 한 몸 뉘울 방 한칸이 아쉬운 이들한테는 먼 나라 얘기다. 서울시내 아파트 전셋값이 몇 천만원씩 떨어졌다 해도, 이들에겐 연초에 오른 방값 1만원의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동자동에서 300세대 규모의 ‘쪽방 건물’을 운영하는 강아무개(52)씨는 “월세를 마련하지 못해 방을 빼는 이들이 과거엔 한 달 평균 5세대 정도였는데, 최근엔 2배 정도 늘었다”며 “여기가 그 사람들에게 마지막 버팀목이라는 건 알지만 나도 살아야 하니 월세를 못 내면 바로 내보내곤 한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의 또다른 삶터인 고시원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 영등포 ㅈ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주아무개(67)씨는 “예전에는 드물었는데, 최근 3개월 동안 6~7명의 사람들이 나간 것 같다. 대부분 하루에 5만~6만원 버는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는데 일감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인근 다른 고시원의 총무 길아무개(45)씨는 “예전에는 월세 연체가 길어야 2~3일이었는데, 지금은 보름씩 연체하는 사람도 있다”며 “일자리를 찾으려고 새벽 4시반에 나가버려 만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 뉴타운 지역에서 37년을 살아온 박아무개(46·여)씨는 오는 12월 가옥 철거를 앞두고 가을 내내 집을 구하러 다녔지만 아직도 전셋집을 구하지 못했다. 16평 규모의 자기 집을 갖고 있는 박씨지만 재산평가액 가운데 세입자에게 돌려준 보증금을 빼고 남은 돈은 3천만원뿐이다. 지체장애인 아들과 고3 수험생인 딸을 홀로 키우는 박씨에게 필요한 방 두 칸짜리 전셋집은 제일 싼 게 5천만~7천만원 정도다. 박씨는 “전셋값이 싼 다른 곳으로 갈까도 했지만 아들이 평생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면, 내가 일 나간 사이 미아가 될까봐 그러지도 못한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월세를 끼고 적당한 집을 찾아보려고 해도, 최근 박씨의 수입이 급격히 줄어 그것도 불가능하다. 노인이나 아픈 사람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박씨의 한달 수입은 과거 7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바우처제도 도입으로 경쟁이 치열해져서 한달에 16만원 정도밖에 못 벌기 때문이다. 빠듯한 살림에 무리를 해서 아파트를 산 서민들의 어깨도 한층 무거워지고 있다. 성북구 길음동에 사는 주부 김아무개(45)씨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1년 반 전 동탄 새도시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김씨가 분양받을 때의 계획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 중도금의 반을 내는 것이었지만, 시세보다 4천만~5천만원을 싸게 내놓아도 팔리지 않고 있다. 김씨는 “대출을 추가로 받아 중도금을 채우더라도 이자 비용까지 계산하면 수입의 대부분을 집에 털어넣게 생겼다”며 “아이들 교육비며 생활비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계속 빚을 쌓아가며 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한탄했다. 권오성 황춘화 기자 sage5th@hani.co.kr
▶ 이랜드 노조위원장 “복직과 250억 손배소 때문에 어쩔 수 없어”
▶ 울 학교 교복, 좀 짱이죠? 예뻐진 교복 100년사
▶ 헌재 “종부세 세대별 합산 과세는 위헌”
6
경기침체의 여파가 저소득층의 주거권을 위협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집값과 전·월세값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제 한 몸 뉘울 방 한칸이 아쉬운 이들한테는 먼 나라 얘기다. 서울시내 아파트 전셋값이 몇 천만원씩 떨어졌다 해도, 이들에겐 연초에 오른 방값 1만원의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동자동에서 300세대 규모의 ‘쪽방 건물’을 운영하는 강아무개(52)씨는 “월세를 마련하지 못해 방을 빼는 이들이 과거엔 한 달 평균 5세대 정도였는데, 최근엔 2배 정도 늘었다”며 “여기가 그 사람들에게 마지막 버팀목이라는 건 알지만 나도 살아야 하니 월세를 못 내면 바로 내보내곤 한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의 또다른 삶터인 고시원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 영등포 ㅈ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주아무개(67)씨는 “예전에는 드물었는데, 최근 3개월 동안 6~7명의 사람들이 나간 것 같다. 대부분 하루에 5만~6만원 버는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는데 일감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인근 다른 고시원의 총무 길아무개(45)씨는 “예전에는 월세 연체가 길어야 2~3일이었는데, 지금은 보름씩 연체하는 사람도 있다”며 “일자리를 찾으려고 새벽 4시반에 나가버려 만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 뉴타운 지역에서 37년을 살아온 박아무개(46·여)씨는 오는 12월 가옥 철거를 앞두고 가을 내내 집을 구하러 다녔지만 아직도 전셋집을 구하지 못했다. 16평 규모의 자기 집을 갖고 있는 박씨지만 재산평가액 가운데 세입자에게 돌려준 보증금을 빼고 남은 돈은 3천만원뿐이다. 지체장애인 아들과 고3 수험생인 딸을 홀로 키우는 박씨에게 필요한 방 두 칸짜리 전셋집은 제일 싼 게 5천만~7천만원 정도다. 박씨는 “전셋값이 싼 다른 곳으로 갈까도 했지만 아들이 평생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면, 내가 일 나간 사이 미아가 될까봐 그러지도 못한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월세를 끼고 적당한 집을 찾아보려고 해도, 최근 박씨의 수입이 급격히 줄어 그것도 불가능하다. 노인이나 아픈 사람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박씨의 한달 수입은 과거 7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바우처제도 도입으로 경쟁이 치열해져서 한달에 16만원 정도밖에 못 벌기 때문이다. 빠듯한 살림에 무리를 해서 아파트를 산 서민들의 어깨도 한층 무거워지고 있다. 성북구 길음동에 사는 주부 김아무개(45)씨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1년 반 전 동탄 새도시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김씨가 분양받을 때의 계획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 중도금의 반을 내는 것이었지만, 시세보다 4천만~5천만원을 싸게 내놓아도 팔리지 않고 있다. 김씨는 “대출을 추가로 받아 중도금을 채우더라도 이자 비용까지 계산하면 수입의 대부분을 집에 털어넣게 생겼다”며 “아이들 교육비며 생활비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계속 빚을 쌓아가며 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한탄했다. 권오성 황춘화 기자 sage5th@hani.co.kr
▶ 이랜드 노조위원장 “복직과 250억 손배소 때문에 어쩔 수 없어”
▶ 울 학교 교복, 좀 짱이죠? 예뻐진 교복 100년사
▶ 헌재 “종부세 세대별 합산 과세는 위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