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권고 수용률
정부부처 비협조·색깔 공세·조직개편 등 전방위 압박
진보쪽도 ‘코드 맞추기·관료화’ 비판…위원 선정 등 난맥상
진보쪽도 ‘코드 맞추기·관료화’ 비판…위원 선정 등 난맥상
“정권이 바뀐 뒤 부처 협조가 잘 안 된다. (우릴 보는) 시선도 차갑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여러 해 일해 온 한 조사관은 “요즘 들어 인권위에 대한 압박이 사방에서 거세 생일을 맞아도 신이 안 난다”고 말했다.
25일로 출범 일곱 돌을 맞는 인권위가 느끼는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보수정권 출범 이후 행정기관의 비협조는 물론이고, 정부·여당의 지속적인 색깔론 공세와 조직 축소·개편론 등 전방위적 압박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를 ‘좌파정권의 유산’으로 여기는 정부·여당이 예산과 인사권을 무기로 ‘인권위 무력화’에 나선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는 마당이다.
인권위는 통상 8월께 해오던 대통령 업무보고를 여태껏 하지 못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24일 “올해도 청와대 수석을 통해 보고 일정을 전달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국가기구의 업무보고조차 받지 않는 것은 이전엔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얼마 전 인권위가 선정한 인권상 훈장 추천자를 일부 보수언론과 단체들의 평판을 이유로 최종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촛불집회 조사결과를 발표한 뒤에도 인권위는 곤욕을 치렀다. 당시 인권위가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결과를 내놓자, 경찰청과 법무부는 곧장 “균형감을 잃은 결정”이라며 정면 반박했고, 한승수 국무총리까지 나서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들었다. 얼마 뒤 감사원은 “(인권위가) 예산 편성·집행 분야 등에서 방만했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올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은 인권위 비효율성과 무용론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인권위 업무의 90% 이상이 국민권익위원회와 겹친다’, ‘헌법상 반드시 있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조직개편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 인권위원은 “현 정부가 국내 인권 분야는 권익위나 법무부에 맡기고, 인권위는 ‘북한특별 인권위원회’ 쯤으로 만들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인권위의 보수화는 시간문제라는 관측도 나온다. 인권위 관계자는 “현재 인권위원의 진보 대 보수 구도가 5 대 5인데, 내년 10월 대통령이 임명하는 새 인권위원장과 사무총장이 보수적 인사로 교체되면 균형추는 확실히 보수 쪽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인권위가 판단기준으로 삼을 것은 보편적 인권법이지 실정법이 아니며, 그래야만 정부·여당의 압박에도 국민적 정당성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경환 인권위원장은 이날 출범 7돌 기념사에서 “법치를 내세우며 인권을 뒤로 미루는 것은 사회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인권은 선진화의 잣대라는 점에서 결코 후퇴할 수 없는 시대정신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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