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구축소 방침에 정면대응 “독립성 가이드라인 검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기구 축소와 독립성 훼손 위협에 시달려온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가 ‘독립성 강화’ 등을 핵심으로 한 새해 업무계획을 마련하는 등 정부의 인권위 축소 방침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15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국은 올해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의장국 선출이 유력하다”며 “새 정부가 업무효율성 등의 이유로 직제와 인원을 조정해 국제적인 인권기구의 독립성을 해친다면 의장국 선출에 치명적”이라며 정부 방침을 비판했다.
인권위의 이런 공세적 대응은 지난 1년의 경험에 비춰 새 정부가 인권위의 독립성을 보장해주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가인권위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100여명을 축소하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다. 행안부는 또 정원 축소와 함께 인권위의 지역사무소 폐지와 정책·교육 기능을 없애는 내용을 뼈대로 한 개편안을 이달 말까지 마련하라고 인권위를 재촉하고 있다.
이런 조직 축소 움직임에 맞서 인권위는 태스크포스팀을 짜 대응 중이며, 그 결과물을 ‘2009년도 업무계획(안)’에 반영했다. 인권위는 이 계획에서 “새 정부 첫해는 위원회 소속 변환 시도와 감사원 감사, 조직개편 및 정원조정 요구 등 어느 때보다도 도전이 많았던 해였다”며 “독립성은 국가인권기구의 생명과도 같은 내용으로, 업무의 독립성을 넘어 인사·조직·예산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전원위원회 논의를 거쳐 내규로 독립성 가이드라인 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이버모욕죄·명예훼손죄 관련 법률’이나 ‘인터넷 실명제 확대의 타당성 검토’ 등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 및 정보인권 문제 등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안경환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제 인권기준으로도 모범이 돼 온 한국이 올해 국제조정위원회 의장국을 맡는 것은 어느 정도 합의된 것”이라며 “이는 새 정부의 선진화 정책에 합치되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 인수위가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하려고 시도한 데 이어 이번에도 기구 축소 등을 추진하고 있어 여전히 국제사회가 한국의 인권 상황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며 “임기가 끝나는 10월 말까지 의장국 선출을 위한 초석을 닦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우선 국제기구 의장국 선출이 정부의 선진화 정책과 맞아떨어진다는 논리로 정부를 설득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의장국 선출을 계기로 국내 인권문제를 국제 인권기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 한국이 의장국이 되면 국제사회의 기대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인권위도 국내 정치 환경 변화 등에 상관없이 독립적인 활동을 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석진환 권오성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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