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 학살현장을 찾은 유족 이병순(76)씨가 굴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김민경 기자
유족회, 780여점 자체 발굴뒤
14년째 서울대에 임시 안치
정부, 봉인시설 건립 계속 미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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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봉인시설 건립 계속 미뤄
경기도 일산시 서구 탄현동 산 23-1번지. 지난 12일 황룡산이 고봉산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자리한 높이 74m의 평범한 야산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모여들었다. 노인들은 야산 중간에 천막으로 가려둔 금정굴 안팎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위령제 때 달아 둔 빛 바랜 리본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59년 전이었다. 1950년 10월 이곳에서 고양경찰서장의 지휘 아래 경찰이 부역 혐의자 또는 그의 가족이란 이유로 153명 이상의 고양·파주 지역 주민들을 집단 총살했다. 지금은 ‘고양 금정굴 사건’이라고 불리는 참극이다.
수십년 동안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서 고통을 삭이던 유족들이 활동에 나선 것은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다. 유족들은 ‘고양 금정굴 유족회’를 결성해 고양시, 고양시 의회, 고양경찰서 등에 유해 발굴을 청원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유족들은 결국 1995년 9월 자체 발굴에 나서 두개골 70여점을 포함해 유골 780여점을 찾아냈다. 그러나 책임을 인정하는 국가기관이 나타나지 않아 48일 동안 유족과 시민단체가 모여 현장을 지켰다. 같은 해 11월 궁여지책으로 서울대 법의학센터 1층 사체 부검실에 임시로 유해를 맡겼고, 어느새 14년이 흘렀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나왔다. 진실화해위는 2006년 6월 이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국가의 유족들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유골·유해를 봉안할 수 있는 추모시설 설치’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의 권고 이행이 지지부진해 추모시설 설치는 아직 기약이 없다.
월북한 시숙 때문에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등 일가 다섯 명을 잃은 마임순 유족회 총무는 “서울대에서는 유해를 가져가라 하고, 경찰청과 고양시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금정굴 근처에 추모시설이 세워지길 바라고 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고양/글·사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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