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불심검문 관련 인권위 진정·상담 건수
‘마약했지’ 등 대놓고 막말
인권위 진정 해마다 늘어
신분증·가방공개 거부 등
“법이 보장한 기본권” 지적
인권위 진정 해마다 늘어
신분증·가방공개 거부 등
“법이 보장한 기본권” 지적
지난 4월6일 오전 10시께, 서울 지하철 화곡역 개찰구 앞에서 한 경찰관이 이 지역에서 권투체육관을 운영하는 김아무개(51) 관장을 불러 세웠다. 김 관장을 막아선 유아무개 경사는 대뜸 “검문을 하겠다”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김 관장은 “휴대전화 고치러 가느라 바쁜데 아침부터 무슨 검문이냐? 신분증을 요구하는 근거를 대라”며 거부했다.
목소리가 커지고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김 관장은 14일 “당시 곁에 있던 박아무개 경사가 ‘너 약(마약) 했지? 이 동네에서 삥 뜯고 있냐’라는 막말을 퍼부었다”며 “박 경사가 내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리려 했고, 이후 순찰차에 태워 지구대로 데리고 갔다”고 주장했다.
김 관장은 강서경찰서 소속 곰달래지구대에 끌려갔다가 30여분 만에 풀려났다. 김 관장은 “연행 과정에서 경찰이 ‘너, 검사한테 한번 가보자, 나한테 빌어야 돼’라고 협박했고, 영장 제시나 미란다 원칙 고지는 아예 없었다”며 “너무 분해 ‘한 대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봉변을 당할까 봐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3조·불심검문)은 경찰의 신분증 제시 요구뿐 아니라, 가방을 뒤지거나 동행을 요구하는 행위에 대해 원하지 않으면 시민이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관장은 “해당 경찰서 청문감사관실에 진정을 넣었지만 지난 13일 ‘박 경사 등이 무혐의로 결정됐다’는 통지를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곰달래지구대는 “기소중지자 검거를 위한 일제 검문 과정에서 김 관장이 먼저 욕을 해서 모욕죄로 현행범으로 체포했는데, 지구대에 와서 해당 경관에게 사과를 하고 화해가 이뤄져 풀어준 것”이라며 “한 달이 지난 뒤에 진정을 넣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해명했다.
김 관장의 경우처럼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시민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경찰의 불심검문 관련 진정은 2006년 7건에서 2007년 27건, 2008년 36건, 2009년 37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5월까지 19건이 접수됐다. 관련 상담도 2006년 17건에서 지난해 51건으로 3배가 늘었다.
인권위가 2001년 이후 접수한 불심검문 관련 진정 158건 가운데 12건은 인권 침해에 대한 시정 권고로 이어졌다.
대법원의 1999년 판례는 ‘(불심검문은) 임의수사의 일종이므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답변을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고 있지만, 수사 편의 등을 위한 부당한 불심검문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이 다가오면 심리적으로 위축돼 자신의 뜻과 달리 검문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며 “불심검문 거부는 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므로, 원하지 않을 경우 신분증 제시나 가방 공개 등 어떤 불심검문에도 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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