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상습구타·얼차려 등 만연…지휘관들은 쉬쉬”
구타·가혹 행위에 비교적 관용적인 해병대의 병영문화가 결국 곪아 터졌다.
지난해 8월 해병대 한 연대에서 선임병들로부터 2층 침상에 매달린 상태로 배, 가슴 등을 맞은 후임병 중 한 이병이 갈비뼈와 가슴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 이병이 고통을 호소하자 선임병들은 후임병들에게 ‘축구를 하다 다쳤다’고 진술하도록 강요했고, 간부들도 구타 사실을 알고서도 사단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가해자 중 1명에게 영창 10일의 행정처분만 내렸다. 또다른 이병도 지난해 12월 선임병에게 맞아 갈비뼈 골절상을 입어 전치 6주 진단을 받았지만 분대장 등 지휘관들은 ‘작업 도중 다쳤다’고 보고하라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는 이들 사건에 대해 직권조사를 한 뒤 “해병대 선임병들이 상습적으로 후임병들에게 구타·가혹 행위를 하고, 지휘관들은 사건을 은폐·축소해왔다”고 24일 발표했다. 인권위는 이어 “구타를 묵인하는 해병대 병영문화의 변화와 지휘감독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해병대 사령관에게 가해 사병 8명을 재조사해 사법처리 등의 조처를 취하라고 권고하고, 피해 정도가 심한 사병 2명의 권리구제를 위해 대한변호사협회에 법률구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주로 청소 불량이나 암기 소홀 등을 문제 삼아 철봉 매달리기나 엎드려뻗쳐 등의 얼차려부터 상습구타, 강제로 음식물 먹이기 등의 가혹행위 등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가해자 대부분이 후임병 시절 유사한 행위를 당했고, 이를 견디는 것을 ‘해병대 전통’으로 알고 있었다”며 “젊은이들이 앞다퉈 해병에 지원하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