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정착 지원시설인 ‘하나원’ 내부. 북한 인권 못지않게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의 인권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커버스토리
‘북한인권운동’에 ‘국내 탈북자 인권’은 없다
단둥과 서울에서 확인한 ‘북송반대 이슈화’의 역설
‘북한인권운동’에 ‘국내 탈북자 인권’은 없다
단둥과 서울에서 확인한 ‘북송반대 이슈화’의 역설
국정원 주도의 합동심문
욕설과 폭행에 사실상의 감금 답변 태도 맘에 안 든다며
볼펜으로 머리를 찍기까지…
한데도 사회적 합의 없이
합동심문 최장 6개월로 늘려
탈북자는 “정착금 받을 처지라” 한국 정부와 자유선진당, 새누리당 등 보수 정당 소속 정치인이 주도하는 탈북자(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반대의 목소리가 북한 인권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 확대로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자 인권은 소외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북한을 탈출해 국내로 들어온 일부 탈북자는 국가정보원 주도로 이뤄지는 합동심문 과정에서 욕설이나 폭행, 사실상의 감금 등 반인권적 대우를 받았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탈북자 강아무개씨는 2009년 ○월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강씨는 ‘자유의 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강씨의 기대는 한국 입국과 동시에 깨졌다. 그가 처음 끌려간 곳은 경기도 모처에 있는 ‘종합합동심문소’였다. 탈북자는 국내에 입국하면 우선 국정원과 통일부, 경찰 관계자가 함께 참여하는 합동심문을 받는다. 여기서 ‘보호대상’으로 판정받으면 그 뒤에는 하나원에서 12주 동안의 정착 교육을 받는다. 강씨에 대한 합동심문도 국정원과 경찰, 국방부 관계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이뤄졌다. 두세평 남짓한 공간에 사실상 갇힌 그는 탈북 배경과 경로는 물론 북한내 친인척 관계, 학력과 이력 등 자신의 거의 모든 ‘과거’를 고백해야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폭행과 폭언이었다.
강씨는 지난해 11월19일 공익변호사모임 공감에 편지를 보내 “2009년 ○월△일 국정원 심사를 받던 도중 호흡곤란이 와 병원에 보내달라고 호소했으나 오히려 세명의 지도관에게 지하 주차장으로 끌려가 구타를 당하고 야비한 폭언을 들었다”며 “국정원이 폭행 사실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내놓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북한에 이 사실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폭행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난청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입국 탈북자에 대한 가혹행위가 문제가 된 것은 강씨 사례가 처음은 아니었다. 충남 아산에 사는 탈북자 박아무개씨는 2007년 ○월 한국으로 들어온 뒤 국정원 등의 조사 과정에서 폭언·폭행에 시달렸다. 조사 담당자는 그에게 함께 입국한 재중동포(조선족)와의 관계를 캐물었다. 일부 재중동포는 탈북자에게 지급되는 정착지원금과 한국 국적 취득을 목적으로 탈북자를 가장해 국내에 들어오기도 한다. 박씨는 북한을 탈출한 뒤 한 재중동포에게서 도움을 얻었을 뿐 모르는 사이라고 밝혔지만 담당자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박씨는 지난 22일 “답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책상에 걸터앉은 국정원 관계자가 조사 과정에서 음료수 캔으로 때리고 볼펜으로 머리를 찍었다”며 “심문에 따른 심한 스트레스로 복통을 호소했지만 소화제만 갖다주며 사실상 내팽개쳤다”고 주장했다. 4일 뒤 박씨의 복통은 맹장염으로 밝혀졌다.
폭행은 아니더라도 종합합동심문소에서 사실상의 감금 등 반인권적인 처우를 당했다는 탈북자의 증언은 이외에도 많다. 2010년 중반 중국을 거쳐 입국한 50대 중반의 탈북자 김아무개(여)씨는 지난 17일 “(합동심문소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마음대로 웃을 수도 없어서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일주일 안팎의 조사를 마친 뒤 약 2개월간 대기실에서 사실상 갇혀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해 입국한 또다른 탈북자 황아무개(20대 초반)씨는 “더운 여름철이었는데 에어컨을 제대로 안 틀어주면서 창문도 열지 못하게 해 몸무게만 7㎏ 빠졌다”며 “책도 못 보게 하는 등 멍하니 앉아 있어야 해 너무 답답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별다른 사회적 합의도 없이 합동심문 기간을 두 배 늘린 것도 탈북자들로서는 불만이다. 정부는 2010년 9월27일 탈북자 합동심문의 근거조항인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고쳐 기존 90일이었던 조사 기간을 최장 180일로 늘렸다. 정부의 의도는 탈북자를 가장한 간첩의 침투를 차단하고 정착지원금을 노리는 재중동포의 위장 입국을 좀더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지난해 입국해 2개월간 합동심문을 받았다는 탈북자 박아무개(20대 중반·여)씨는 “나의 경우 2개월 동안 갇혀 지낸 것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그 기간을 6개월로 늘린다면 다른 탈북자들은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정부가 탈북자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의 법령 개정을 추진하며 탈북자 등의 의견수렴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익변호사모임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지난 15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탈북자가 한국에 정착하려면 국정원장으로부터 ‘임시보호나 그밖의 필요한 조치’를 받아야 하는데, 상당수 탈북자는 ‘임시보호’를 사실상의 감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시행령 개정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탈북자의 의견수렴 등 사회적 합의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합동심문 등의 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더라도 대다수 탈북자가 이를 드러내기 꺼린다는 것도 탈북자 인권 침해 실태 파악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탈북자는 정부로부터 초기 생계비용이라 할 수 있는 정착지원금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탈북자가 국내에 입국하면 정착기본금과 주거지원금, 고용지원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지급되는 정착기본금은 1인 가구 기준으로 600만원이다. 하지만 탈북자에 따라 감액되는 경우가 있다. 앞서 합동심문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탈북자 박씨는 “답변 태도가 의심스럽다며 정착기본금의 절반(300만원)밖에 못 받았다”고 밝혔다. 또다른 탈북자 황아무개(20대 후반)씨도 “정착지원금으로 사람을 위협하니 정부 사람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23일 “‘탈북자 폭행’은 합동심문 과정에서 허위진술 사실이 발각돼 정착금 삭감 등 불이익을 당한 탈북자의 일방적 주장”이라며 “국정원은 탈북자를 ‘따뜻하게 배려해야 할 동포’로 인식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있으며, 조사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인권침해 시비도 차단하기 위해 인권보호지침을 제정·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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