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철 인권위’ 3년 돌아보니
2009년 7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취임 뒤, 인권침해에 직면한 시민들에게 인권위원회는 무능력한 존재였다. 평범한 시민부터 인권·시민운동가, 인권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인권위로 인해 오히려 인권침해를 당한 ‘인권위 피해자’도 양산됐다. 지난 11일 이명박 대통령이 현 위원장을 연임시키자, 이들은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입을 모았다.
■ 인권위가 외면한 사람들 현 위원장이 취임한 2009년,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사안이 봇물을 이뤘다. ‘피디수첩 사태’가 대표적이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불을 지핀 <문화방송> ‘피디수첩’ 제작진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수사 의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인권위 사무처는 2009년 12월 “공적 영역에서 언론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이 충돌할 때 언론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자는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올렸다. 그러나 현 위원장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부결됐다. 조능희 피디는 “정상적인 인권위라면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지켜줬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9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신청한 ‘한진중공업 고공농성자 등의 인권보호 관련 의견표명’ 안건도 ‘현병철 인권위’는 부결시켰다. 김 지도위원은 “공권력 투입으로 인해 식수·음식·옷가지조차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권침해에 대한 마지막 구조요청을 인권위가 뿌리쳤다”고 말했다.
‘인권무시위원회’
PD수첩 수사·한진중 농성…
의견표명 번번이 부결시켜
인권위원들 반발 ‘줄사퇴’ ■ 배제된 인권위원, 인권위 직원들 현 위원장 체제에서 인권위 의결 구조도 왜곡됐다. 위원장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 위상이 강화되는 대신 3명의 상임위원들로 구성된 상임위 권한은 축소됐다. 2010년 10월에는 인권위 상임위원 3명이 특정 안건에 합의하더라도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전원위에 상정해 재논의할 수 있고, 상임위 의결로 가능했던 긴급 인권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도 전원위를 거쳐야 하는 등 상임위의 권한을 축소하는 운영규칙 개정안을 전원위에 상정해 상임위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2010년 11월1일 상임위원 3명 가운데 2명이 사퇴했다. 유남영 위원은 임기를 1개월 앞두고 사퇴했다. 한나라당이 추천한 문경란 위원마저 “인권위가 파행과 왜곡의 길을 거쳐 고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며 사퇴했다. 비상임 인권위원으로 일했던 조국 서울대 법학과 교수를 비롯한 60여명의 전문·자문·상담위원들도 줄줄이 사퇴했다. 뒤이어 현 위원장은 직원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인권위는 2011년 2월 인권위 직원노조 핵심 간부였던 강아무개 조사관의 고용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인권전문가를 별정직·계약직으로 채용해 2~3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했던 관례에 비춰 파행적인 처사였다. 이에 대해 현 위원장에 비판적인 인권전문가를 솎아내려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하며 1인시위에 나선 인권위 직원 11명이 정직과 감봉 등 징계를 받았다. 강 전 조사관은 “1인시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사안에 대해 인권위가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같은 일로 인권위 직원들이 징계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강 전 조사관이 끝내 해고되자, 인권정책과 노동인권 부문에서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담당했던 김아무개 조사관도 지난해 1월 사표를 썼다. 인권위 안에서도 인권침해
인권위 점거농성하자 단전
장애인 1명 폐렴으로 숨져
직원 자르고 무더기 징계도 ■ 노동권에 눈감고 소수자를 내몰고 노동인권 문제를 전담했던 김 전 조사관이 사직한 뒤 1년6개월 동안 인권위가 내놓은 노동권 분야 정책 권고는 하나도 없었다. 회사 쪽의 탄압에 밀려 갈 곳 없는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댔던 곳이 인권위였는데, 현 위원장 체제에선 그 역할마저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 한진중공업으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400명의 생산직 노동자, 기약 없는 복직을 기다리다 22명의 동료가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2600여명의 쌍용차 노동자에 대해 인권위는 어떤 권고나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현 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들끓던 지난해 1월에는 인권위를 점거농성하던 뇌병변 1급 중증장애인 활동가 우동민(43)씨가 급성폐렴으로 사망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당시 인권위가 농성장으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를 멈춘다든가 전기를 끊어버리며 농성을 방해했는데, 그 같은 열악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농성 참가자들의 처벌도 적극 도왔다. 박 대표는 “과거엔 인권위를 상대로 시위를 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지는 않았는데, 현 위원장의 인권위는 인권위 직원을 검찰 쪽 증인으로 세워 당국의 처벌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농성 참가자들은 지난 5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결국 힘없는 소수자 피해
정치적 민감한 현안에 침묵
사실상 국가·경제권력 편들어
“인권 최후의 보루 권위 추락” ■ 피해의 종착지는 평범한 시민들 무능한 인권위의 최대 피해자는 평범한 시민이다. 지난해 9월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학생들을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쐈다. 많은 학생들이 공포에 떨었다. 11월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를 동원했다. 당시 인권위 홍보대사이기도 했던 방송인 김미화씨는 이에 대한 인권위의 공식적 의견 표명을 요구했으나, 현 위원장은 이를 안건으로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시위도 외면당했다.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해 주민 및 활동가들이 인권위의 현장조사와 해결방안 마련을 거듭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 대책위원장은 “마을 어르신까지 경찰의 폭력에 속수무책인 상태인데도 인권위는 아무 구실도 하지 않았다”며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10년 9월 인권정책과 과장으로 일하다 그만둔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현 위원장이 취임 직후부터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사회적으로 혼란한 사안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하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직접 지시했다”며 “시민들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없어 무력감이 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인권위의 한 직원은 “현 위원장의 취임 이후 인권위의 권위가 추락했고, ‘신문고’ 역할을 했던 인권위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 바닥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은 12일 현 위원장을 인사청문회를 통해 낙마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임기 동안 현 위원장이 자격이 없다는 것은 이미 검증이 끝났다”고 말했다. 새누리당도 “인사청문회에서 검증해서 국민 정서에 맞게 조처하겠다”고 밝혔다. 진명선 엄지원 김보협 기자 torani@hani.co.kr [화보] 김보경 2골 ‘새 해결사’…최강희호 거침없는 2연승
이명박 대통령이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연임시켜 각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에 직원이 지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PD수첩 수사·한진중 농성…
의견표명 번번이 부결시켜
인권위원들 반발 ‘줄사퇴’ ■ 배제된 인권위원, 인권위 직원들 현 위원장 체제에서 인권위 의결 구조도 왜곡됐다. 위원장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 위상이 강화되는 대신 3명의 상임위원들로 구성된 상임위 권한은 축소됐다. 2010년 10월에는 인권위 상임위원 3명이 특정 안건에 합의하더라도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전원위에 상정해 재논의할 수 있고, 상임위 의결로 가능했던 긴급 인권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도 전원위를 거쳐야 하는 등 상임위의 권한을 축소하는 운영규칙 개정안을 전원위에 상정해 상임위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2010년 11월1일 상임위원 3명 가운데 2명이 사퇴했다. 유남영 위원은 임기를 1개월 앞두고 사퇴했다. 한나라당이 추천한 문경란 위원마저 “인권위가 파행과 왜곡의 길을 거쳐 고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며 사퇴했다. 비상임 인권위원으로 일했던 조국 서울대 법학과 교수를 비롯한 60여명의 전문·자문·상담위원들도 줄줄이 사퇴했다. 뒤이어 현 위원장은 직원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인권위는 2011년 2월 인권위 직원노조 핵심 간부였던 강아무개 조사관의 고용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인권전문가를 별정직·계약직으로 채용해 2~3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했던 관례에 비춰 파행적인 처사였다. 이에 대해 현 위원장에 비판적인 인권전문가를 솎아내려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하며 1인시위에 나선 인권위 직원 11명이 정직과 감봉 등 징계를 받았다. 강 전 조사관은 “1인시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사안에 대해 인권위가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같은 일로 인권위 직원들이 징계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강 전 조사관이 끝내 해고되자, 인권정책과 노동인권 부문에서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담당했던 김아무개 조사관도 지난해 1월 사표를 썼다. 인권위 안에서도 인권침해
인권위 점거농성하자 단전
장애인 1명 폐렴으로 숨져
직원 자르고 무더기 징계도 ■ 노동권에 눈감고 소수자를 내몰고 노동인권 문제를 전담했던 김 전 조사관이 사직한 뒤 1년6개월 동안 인권위가 내놓은 노동권 분야 정책 권고는 하나도 없었다. 회사 쪽의 탄압에 밀려 갈 곳 없는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댔던 곳이 인권위였는데, 현 위원장 체제에선 그 역할마저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 한진중공업으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400명의 생산직 노동자, 기약 없는 복직을 기다리다 22명의 동료가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2600여명의 쌍용차 노동자에 대해 인권위는 어떤 권고나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현 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들끓던 지난해 1월에는 인권위를 점거농성하던 뇌병변 1급 중증장애인 활동가 우동민(43)씨가 급성폐렴으로 사망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당시 인권위가 농성장으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를 멈춘다든가 전기를 끊어버리며 농성을 방해했는데, 그 같은 열악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농성 참가자들의 처벌도 적극 도왔다. 박 대표는 “과거엔 인권위를 상대로 시위를 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지는 않았는데, 현 위원장의 인권위는 인권위 직원을 검찰 쪽 증인으로 세워 당국의 처벌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농성 참가자들은 지난 5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결국 힘없는 소수자 피해
정치적 민감한 현안에 침묵
사실상 국가·경제권력 편들어
“인권 최후의 보루 권위 추락” ■ 피해의 종착지는 평범한 시민들 무능한 인권위의 최대 피해자는 평범한 시민이다. 지난해 9월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학생들을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쐈다. 많은 학생들이 공포에 떨었다. 11월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를 동원했다. 당시 인권위 홍보대사이기도 했던 방송인 김미화씨는 이에 대한 인권위의 공식적 의견 표명을 요구했으나, 현 위원장은 이를 안건으로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시위도 외면당했다.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해 주민 및 활동가들이 인권위의 현장조사와 해결방안 마련을 거듭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 대책위원장은 “마을 어르신까지 경찰의 폭력에 속수무책인 상태인데도 인권위는 아무 구실도 하지 않았다”며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10년 9월 인권정책과 과장으로 일하다 그만둔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현 위원장이 취임 직후부터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사회적으로 혼란한 사안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하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직접 지시했다”며 “시민들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없어 무력감이 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인권위의 한 직원은 “현 위원장의 취임 이후 인권위의 권위가 추락했고, ‘신문고’ 역할을 했던 인권위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 바닥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은 12일 현 위원장을 인사청문회를 통해 낙마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임기 동안 현 위원장이 자격이 없다는 것은 이미 검증이 끝났다”고 말했다. 새누리당도 “인사청문회에서 검증해서 국민 정서에 맞게 조처하겠다”고 밝혔다. 진명선 엄지원 김보협 기자 torani@hani.co.kr [화보] 김보경 2골 ‘새 해결사’…최강희호 거침없는 2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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