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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법정에 노출된 ‘음란한 성기’ 검열을 거부하다

등록 2012-06-26 20:26수정 2012-06-27 16:39

박민규 박경신
박민규 박경신
소설가 박민규의 ‘성기사진 게재’ 박경신 교수 공판 참관기
박 교수, 블로그 등 표현자유 옹호하며 외로운 최후변론
법정이 ‘음란’으로 규정한다면 한국은 백혈병에 걸린 사회
박경신(사진 오른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7월20일 자신의 블로그에 한 남성의 성기 사진을 올려 표현의 자유 논쟁을 촉발했다. 이 사진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음란물로 판정하고 인터넷 접속 차단을 결정한 게시물이었다. 박 교수는 행정기구인 방통심의위가 위헌적 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고발’ 차원에서 이 사진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박 교수를 정보통신망법 위반(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했고, 지난 25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다. 소설가 박민규(왼쪽)씨가 이날 재판을 참관한 뒤 ‘검열에 관한 단상’을 적은 글을 보내왔다.

재판정에서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저녁의 게임>이란 영화였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목욕시키는 딸의 모습이 보였다. 비누칠한 손으로 딸이 사타구니를 문지르자 노인의 성기가 꼿꼿해지기 시작했다. 발기한 성기를 영화는 여과 없이 보여주고, 아무런 삭제 없이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음란이란 무엇이냐? 음란의 기준은 무엇인가? 다시 법정에선 갑론을박이 시작되었다. 25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303호실에서 열린 ‘블로그 성기 사진 게재 사건’ 재판의 한 풍경이다.

‘검열’이 문제건만…‘음란’ 놓고 공방만

사건은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당사자인 박경신 변호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위원이라서 파장도 더욱 컸다. 초점은 늘 심의위원과 성기, 두 단어에 맞춰져 있어 결국 사건은 ‘성기 사진 게재’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세간에 알려졌다. 검찰의 기소 내용도 ‘음란물 유포’였으니 음란이냐 아니냐가 재판의 주를 이룬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건의 초점은 따로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바로 ‘검열’이다. 알려지지 않은 한국 사회의 검열에 관한 검열 없이는 도대체 심의위원과 성기라는 두 단어의 간극을 메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방통심의위는 여당이 추천한 6명과 야당이 추천한 3명, 도합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블로그와 개인 홈피(최근엔 에스엔에스까지)를 검열하는 사실을 아는 이도 드물 것이며, 더군다나 아무 통보 없이 폐쇄·차단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더욱 드물 것이다. 6 대 3. 이른바 여대야소. 의견 충돌이 있는 안건은 다수결 처리. 게다가 대통령이 추천한 심의위원 3명 중에는 2명의 공안검사 출신도 끼어 있었다. 소설에서는 보통 이런 상황을 ‘그는 그곳을 장악했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하는데, 물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의 작가들에 한해서다. 음란인가 음란이 아닌가, 남의 집에 들어와 솥뚜껑을 찾아 들고 “이건 자라가 아닌가!”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빌미로 삼아) 집을 철거하는 식의 검열이 존재하는 한 민주주의는 없다. 검열이 권력이 되는 사회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며, 마침 연이어 터져나온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그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박경신은 개인의 표현에 대해 행정기관이 일방적으로 칼을 댈 수 없으며, 국민이 모르는 상황에서 게시글을 삭제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반대했다. 결과는 늘 마찬가지였다(다수결에 의해).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검열자 일기’라는 코너를 개설했고, 자신의 시각으로 봤을 때 부당했던 검열건들을 게재하고 토로했다. 하루 평균 서너명의 지인들이 찾아오는 블로그였고, 문제의 사진은 검열자 일기에 올랐던 게재물의 하나였다. 여당 쪽 심의위원이 이를 문제 삼았다. 심의위원의 블로그가 심의위원회에 회부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이것은 바로 뉴스가 되었다. 수만명이 몰려와 문제의 사진을 보았고 한 시민단체가 그를 고소했다. 그저 성기일 뿐인 단순한 성기 사진이 법정의 화두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문제는 다시 ‘음란’으로 돌아온다. 만약 이것이 음란으로 규정된다면 우리 사회는 백혈병에 걸린 사회가 아닐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건전’이라는 이름의 백혈구도 적정 수치를 유지할 때 그 기능을 발휘하며, 음란의 잣대와 격을 높이는 일도 국격을 높이는 일의 일환이라 나는 믿고 있다. 최후 변론에 임하는 박경신의 뒷모습이 그래서 더 외롭게 느껴졌다. 21세기다. 이것은 도덕의 문제도 보수와 진보의 문제도 아닌, 진화(進化)의 문제이다. 이 재판이 우리 사회의 진화에 대한 창세기 1장 1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서툰 글을 끝맺는다.

소설가 박민규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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