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식량정책 항의 민간인학살
“경찰, 정당한 이유 없이 불법행위”
희생자 60여명 소송 잇따를듯
“경찰, 정당한 이유 없이 불법행위”
희생자 60여명 소송 잇따를듯
1946년 발생한 이른바 ‘대구 10월 사건’의 희생자들에게 60여년 만에 국가가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1946년 10월 대구와 경북 등지에서 미군정의 식량 공출제도 등에 항의해 시위와 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이 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했다. 다른 피해자 유족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법 민사8부(재판장 심형섭)는 10월 사건 때 학살당한 정아무개·이아무개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보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정씨와 이씨 유족한테 각각 5억9500만원과 3억9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16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10월 사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10년 3월 조사 결과와 법정에 나온 참고인과 관련자의 증언으로 미뤄볼 때 경찰의 불법행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경찰이 정당한 이유와 적법한 절차 없이 국민을 살해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와 생명권, 적법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 공무원들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희생자들과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이 사건은 미군정의 친일관리 고용과 토지개혁 지연 및 강압적 식량공출 시행 등에 항의한 노동자·농민 등이 파업과 항의시위를 벌인 게 발단이다. 경찰이 대구역 등에 모인 수천명을 향해 발포했고, 시위가 확산하자 미군정이 10월2일 계엄령을 선포해 진압했다. 하지만 시위는 같은달 6일 경북 칠곡군 등에 이어 12월엔 남한 전역으로 확산했다. 이후 시위가 진압됐지만 경찰은 당시 시위 참가자들과 가족들을 붙잡아 총살했다.
정씨와 이씨는 49년 6월에 희생됐다. 정씨는 당시 철도노동자였던 형이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이씨는 시위 참여를 호소하는 홍보물(이른바 ‘삐라’)을 붙이고 심부름을 했다는 이유로 경북 칠곡경찰서로 강제로 연행된 뒤 칠곡면 석적읍 성곡리 벼랑 골짜기로 끌려가 사살됐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1월~2010년 3월 ‘대구 10월 사건’ 민간인 희생 조사를 벌여 60명이 경찰에 희생당했다고 발표하고 “국가는 민간인 희생자와 유족들한테 위령·추모사업 지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역사기록 수정 및 등재, 평화인권교육 강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정씨와 이씨의 유족들은 2011년 4월과 지난해 5월 소송을 냈다.
정씨의 아들인 정도곤(64)씨는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친척들로부터 ‘빨갱이 자식’이라며 손가락질을 받고 매를 맞아 고향을 떠났다. 정부는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10월 사건 희생자와 유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을 이끈 변영철 변호사는 “국가권력이 친일 인사들을 등용하고 배가 고픈데도 강제로 쌀을 거둬가는 정부에 항의한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이 명백히 잘못됐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유족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국가는 항소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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