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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이사람] “군화에 짓밟힌 마음 이제야 치료받네요”

등록 2013-02-05 20:01

광주트라우마센터(센터장 강용주·왼쪽 세번째) 원예치유 과정에 참가한 ‘5·18민중항쟁’ 유가족 10명이 꽃다발을 만들고 있다.
광주트라우마센터(센터장 강용주·왼쪽 세번째) 원예치유 과정에 참가한 ‘5·18민중항쟁’ 유가족 10명이 꽃다발을 만들고 있다.
광주트라우마센터 원예치유 첫 수료생 5·18 유족들
국가폭력 희생자 위해 작년 개원
서로 상처 터놓으며 아픔 보듬어
“과거사 바로잡아야 궁극적 치유”
“꽃에게 ‘잘 잤니? 사랑한다’고 말하고, ‘호’ 하고 입김을 불어넣어줘요.” 광주광역시에 사는 임현서(66)씨는 5일 아침마다 머리맡에 있는 꽃바구니와 인사를 나눈다. 국가폭력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진행한 원예치유 과정에 참가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그의 남편은 1980년 5월19일 계엄군에 구타당한 뒤 후유증을 앓다가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임씨는 지난해 11월부터 12주 동안 수요일마다 화분과 꽃바구니 등 13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지금껏 종갓집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가슴속에 품고 있던 내 상처를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5월 그때 남편을 찾으러 거리로 나갔다가 계엄군에게 붙잡혀 이유 없이 군화로 내리찍힌 자국이 몸에 아직도 남아 있어요. 이제라도 마음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5·18항쟁 등 국가폭력으로 상처를 입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유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와 광주시의 지원으로 문을 열었다. 상담과 몸풀이, 원예·사진·미술을 활용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원예치유 과정에는 임씨를 비롯 5·18 때 가족을 잃은 유족 10명이 참가했다. 꽃바구니를 만든 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보내는 편지도 써넣어 자신에게 선물했다. 또 결혼식 날, 첫 아이를 만난 때 같은 환희의 순간을 일곱 색깔 모래로 표현한 뒤 소감을 서로 나눴다. 강사 손명희(47)씨는 “꽃과 나무를 만지고 그 느낌을 나누면서 내면의 아픔을 치유했다. 어르신들의 아픈 사연을 들으며 내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지난달 30일 수료증을 받던 날 ‘같은 사건을 겪어서인지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서로 얼싸안았다.

고교 1년생 막내아들을 떠나보냈던 문건양(77)씨는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고 말했다. 막내 재학군은 80년 5월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총에 맞아 숨진 뒤 국립 5·18민주묘지에 누워 있다. 박유덕(71)씨도 “이곳에 와서야 처음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며 고마워했다. 박씨는 남편이 5·18 때 헌병대로 끌려가 고초를 겪은 뒤 1년 만에 세상을 뜨자 지금껏 홀로 네 자녀를 키웠다.

강용주(51) 광주트라우마 센터장은 “국가폭력으로 외상후 스트레스를 경험한 이들과 그 가족들의 치유하려면 사회적 지지와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 5·18항쟁을 폭동으로 왜곡하는 것은 이들에게 2차 외상을 입히는 폭력이다. 그래서 과거사를 바로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유책”이라고 힘줘 말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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