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무국적 상태인 마히아(8)가 8일 오후 엄마·동생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마친 뒤 탑승구로 걸어가다, 면세구역이 바라다보이는 4층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인천공항/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불법 체류자 가족의 눈물
이 땅서 태어나고 자란 딸
엄마·아빠 불법체류 굴레에
배움도 미래도 허락 안돼
아빠와 헤어져 방글라데시로 여덟살 마히아의 큰 눈에 갑자기 물기가 차올랐다. “아, 모르겠어요.” 이내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방글라데시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마음이 착잡한 듯했다. 마히아의 피부색과 외모는 여느 한국 사람과 다르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긴 팔다리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중앙아시아 지역 사람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히아가 태어난 곳은 다름 아닌 한국, 서울 망우리의 어느 산부인과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필립(가명·34)과 알리이(가명·29) 사이에서 2005년에 태어났다. 부모는 딸에게 ‘불법 체류자’ 신분도 물려주었다. 줄곧 한국에서 나고 자란 마히아는 뼛속까지 한국 정서를 갖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다. 가끔 부모가 방글라데시 음식을 해줘도 잘 먹지 않는다. “매운 거 좋아해요.” 방글라데시로 떠나며 가져가는 짐의 절반이 고추장, 김, 불고기 양념 같은 한국 음식이다. 엄마 알리이는 “한국에 남는 아빠가 계속해서 책이랑 음식 같은 걸 소포로 보내줘야 해요”라고 말했다. 마히아는 방글라데시말(벵골어)도 거의 모른다. 마히아는 7일까지만 해도 경기 마석초등학교 녹촌분교 2학년 학생이었다.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냥 ‘한국 아이’로 불렸다. 마히아는 자신이 방글라데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마히아가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기까지 부모는 많이 고심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어도 마히아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다. 아직 방글라데시에서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마히아는 서류상으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국적자, ‘국제 미아’다. 공부를 좋아하는 마히아의 교육도 고민거리였다. 미등록 외국인인 마히아가 상급 학교에 진학하려면 해당 학교 교장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 거절당하면 학교교육도 받을 수 없다. ‘불법 체류자’인 마히아의 아빠·엄마는 언제 단속당해 강제 추방될지 모르는 불안한 신분이다. 국적과 학교 진학이라는 마히아의 어두운 미래를 걱정한 부모는 결국 아이를 방글라데시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곳에서 출생신고를 할 계획이지만, 아이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출국 하루 전날, 20여명이 공부하는 녹촌분교의 친구들은 마히아와의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친구들한테 이메일 자주 보내려고요.” 마히아는 살짝 웃어 보였지만, 한국을 떠나기 싫은 표정이 역력했다. “방글라데시 말도 모르고, 친구하고 헤어지는 것도 싫고… 그냥 여기가 좋아요. 계속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눈물로 보낸 마히아는 8일 오후 1시50분 엄마와 동생의 손을 잡고 방글라데시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를 향해 ‘무국적 소녀’는 이렇게 또 미지의 여행을 떠났다. 출국 하루 전인 7일, 긴 여행을 준비하느라 바쁜 마히아 가족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홀로 한국에 남아 양육비를 벌어야 하는 마히아 아빠 필립은 인터뷰 내내 가슴을 쳤다. “내가 가슴이 답답하고 쓰립니다. 한국 사람이 미국 가서 애 낳으면 미국 사람이잖아요. 왜 우리 딸은 한국 사람이 아닙니까?” 아빠의 구구절절한 외침이 곰팡이 슨 3평 단칸방을 울렸다. 마히아의 집은 경기 남양주시 마석 가구단지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월세 20만원짜리 지하 단칸방은 이삿짐으로 어지러웠다.
마히아의 무국적은 일종의 대물림이다. 부모는 2000년대 초반 세 달짜리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불법 체류자’(미등록 외국인) 신세가 됐다. 마석 가구단지 안에서 벌어진 토끼몰이식 단속은 부부에겐 늘 위협으로 다가왔다. 많은 친구와 동료가 강제출국당하는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에게 마히아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더욱 일을 열심히 하게 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마히아를 키우기 위해 엄마는 가구공장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다. 지난해에는 둘째딸 이온피도 태어났다. 가구공장에서 도색 작업을 하는 필립의 월급 150만원은 가족의 유일한 수입이다. 넉넉하진 않지만 한국에 잘 적응해가는 마히아를 보면서 행복했다.
행복한 가족 앞에 현실의 문제가 들이닥쳤다. ‘불법 체류자’인 부모 사이에서 낳은 마히아에게 한국 정부는 국적은 물론 체류 자격도 주지 않았다. 부모의 조국인 방글라데시 또한 마찬가지다. ‘속인주의’를 택한 국내법상 한국 국적 취득은 당연히 안 됐고, 방글라데시 대사관에 가서 딸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싶었으나 불법 체류자인 것이 들통날까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히아처럼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다 먼저 방글라데시로 돌아간 아이들도 현지에서 국적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게 마히아는 8년을 국적 없는 ‘국제 미아’로 살아왔다.
속인주의 탓 한국국적 취득 못하고
불법체류 들통날까 출생신고 못해
그렇게 9년뒤 아이는 ‘국제미아’로 방글라데시로 보내 가족 생이별
“딸이 적응 잘할지, 아프진 않을지…”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국 한국은
미등록 이주아동 실태파악에 뒷짐
권리 보장 않고 ‘불법체류’ 딱지만 붙임성이 좋은 마히아는 학교 친구도 많고 학업 성적도 우수했다. 가장 좋아하는 걸 묻는 질문에 마히아는 “공부요. 수학을 제일 좋아해요”라고 대답했다. 큰 눈은 초롱초롱했다. 또박또박한 한국 발음만 들어보면 영락없는 한국 아이다. 마히아는 피아노 실력도 좋다. 최근 바이엘을 떼고 체르니를 시작했다. “(방글라데시로) 나가야 하니깐 체르니 책은 안 샀어요. 방글라데시에서도 피아노를 가르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알리이가 큰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마히아의 학업 열의는 엄마·아빠도 놀랄 정도다. 단 한 번도 학교 수업에 빠진 적이 없고 주말에도 늘 책을 끼고 살았다. 법무부는 아이들의 인권을 고려해 미등록 이주아동이 다니는 학교 교장의 불법체류자 신고 의무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시행중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 자체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염불에 가까운 정책이라는 비판이 인다. 상급학교에 진학할수록 이런 문제는 더욱 커진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입학 상담 때 외국인 등록증을 요구하자 상담 도중 부모가 도망가버린 사례도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교육권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필립과 알리이는 방글라데시로 돌아갈 마히아의 학업뿐만 아니라 건강도 걱정했다. 마히아는 태어나자마자 폐렴에 걸려 1주일 넘게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병원비만 300만원 넘게 나왔다. 이들을 정작 두렵게 하는 건 병이 아니라 돈이다. 그나마 감기 같은 작은 병은 남양주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 안에 있는 진료소에서 해결했다. 알리이는 “방글라데시는 한국보다 훨씬 더우니까 피부병도 많고 폐렴 같은 것도 많아요. 아는 이주노동자 가족도 돌아갔다가 아이가 아파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마히아가 아프진 않을까 걱정이에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알리이는 말을 아끼면서도 한국 정부가 야속하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우리는 쫓겨나도 좋아요. 그래도 아이는 어떻게라도 보호받게 해줘야죠.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요? 제가 나가면 5년 뒤에나 들어와야 하는데 그동안 법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이 1991년에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 7조는 ‘아동은 출생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마히아처럼 국적이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국적은 고사하고 체류권조차 주지 않는다. 정부는 실태 파악조차 한 적이 없다. 남양주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의 이영 사무처장은 “현장 기관들의 추산으로는 전국적으로 4000명 정도의 미등록 이주아동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 한국 정부의 이들에 대한 배려는 냉혹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정부는 교육·건강·보육 같은 기본 권리를 제공하기보다 ‘불법 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최소한 체류권과 교육권이라도 보장된다면 마히아도 한국에서 계속 공부하며 “아픈 아이들을 고쳐주는 소아과 의사”가 되는 꿈을 키울 수 있겠지만, 이런 제도는 한국에서 아직 싹도 틔우지 못했다.
8일 오후 방글라데시행 비행기가 떠난 뒤 필립은 “마히아가 가기 싫다고 많이 울었어요”라고 전했다. 혼자 남은 아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마석/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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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헤어져 방글라데시로 여덟살 마히아의 큰 눈에 갑자기 물기가 차올랐다. “아, 모르겠어요.” 이내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방글라데시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마음이 착잡한 듯했다. 마히아의 피부색과 외모는 여느 한국 사람과 다르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긴 팔다리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중앙아시아 지역 사람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히아가 태어난 곳은 다름 아닌 한국, 서울 망우리의 어느 산부인과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필립(가명·34)과 알리이(가명·29) 사이에서 2005년에 태어났다. 부모는 딸에게 ‘불법 체류자’ 신분도 물려주었다. 줄곧 한국에서 나고 자란 마히아는 뼛속까지 한국 정서를 갖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다. 가끔 부모가 방글라데시 음식을 해줘도 잘 먹지 않는다. “매운 거 좋아해요.” 방글라데시로 떠나며 가져가는 짐의 절반이 고추장, 김, 불고기 양념 같은 한국 음식이다. 엄마 알리이는 “한국에 남는 아빠가 계속해서 책이랑 음식 같은 걸 소포로 보내줘야 해요”라고 말했다. 마히아는 방글라데시말(벵골어)도 거의 모른다. 마히아는 7일까지만 해도 경기 마석초등학교 녹촌분교 2학년 학생이었다.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냥 ‘한국 아이’로 불렸다. 마히아는 자신이 방글라데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마히아가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기까지 부모는 많이 고심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어도 마히아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다. 아직 방글라데시에서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마히아는 서류상으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국적자, ‘국제 미아’다. 공부를 좋아하는 마히아의 교육도 고민거리였다. 미등록 외국인인 마히아가 상급 학교에 진학하려면 해당 학교 교장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 거절당하면 학교교육도 받을 수 없다. ‘불법 체류자’인 마히아의 아빠·엄마는 언제 단속당해 강제 추방될지 모르는 불안한 신분이다. 국적과 학교 진학이라는 마히아의 어두운 미래를 걱정한 부모는 결국 아이를 방글라데시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곳에서 출생신고를 할 계획이지만, 아이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출국 하루 전날, 20여명이 공부하는 녹촌분교의 친구들은 마히아와의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친구들한테 이메일 자주 보내려고요.” 마히아는 살짝 웃어 보였지만, 한국을 떠나기 싫은 표정이 역력했다. “방글라데시 말도 모르고, 친구하고 헤어지는 것도 싫고… 그냥 여기가 좋아요. 계속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마히아가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장으로 들어서기 전 뒤돌아 보며 아빠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인천공항/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마히아(왼쪽)와 엄마 알리이(가명), 아빠 필립(가명)이 출국 하루 전인 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공단에 있는 집에서 가족이 흩어지는 데 따른 아픔을 얘기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과 곧 발의될 ‘이주아동 권리 보장법’은 아동에게 부모와 함께 살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남양주/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마히아와 엄마 아키가 출국 하루 전인 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화도읍 친구 집에 맡겨 놓은 짐을 살펴보고 있다. 남양주/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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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히아와 엄마 아키가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하기 전 아빠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인천공항/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마히아(왼쪽)가 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수속을 기다리며 동생 이요피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이고 있다. 인천공항/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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