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찰 대응안 마련 조사
다수 문항서 시민피해와 연결
진압 강화 답변 끌어내기도
“집시법 개악 근거용” 비판
다수 문항서 시민피해와 연결
진압 강화 답변 끌어내기도
“집시법 개악 근거용” 비판
정부가 ‘경찰의 바람직한 집회·시위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며 시민·경찰 등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설문조사가 되레 집회·시위의 자유를 옥죄는 쪽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악 근거를 마련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8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인권단체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문화부는 지난 6월 중순부터 시민 500여명과 경찰·집회 주최 관계자 각 200여명을 대상으로 ‘경찰의 집회 관리 방식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월드리서치’가 문화부를 대행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진보연대·인권운동사랑방 등 주요 시민사회단체에 보낸 설문지는 일반적인 집회 문화, 집회의 개최·대응에 따른 피해, 집시법, 경찰의 집회 대응방식 등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집회의 개최·대응에 따른 피해’를 묻는 22개의 질문 중 16개는 집회 개최를 곧 시민 피해로 연결짓고 있다. △집회·시위는 교통 정체를 일으킨다 △소음 피해를 야기한다 △시민들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방해한다는 등의 문항에 대해 ‘매우 그렇다’ ‘그런 편이다’ ‘보통이다’ ‘그렇지 않은 편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등 5가지 답 중 하나를 고르는 식이다.
‘경찰의 집회 대응 방식’의 개선사항으로 열거된 문항들도 18개 중 12개가 △경찰은 보다 강한 규제를 해야 한다 △주최 쪽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현장 연행 및 체포를 강화해야 한다 등 현장 진압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매우 그렇다’부터 ‘전혀 그렇지 않다’의 5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돼있다.
설문지를 받은 인권운동사랑방의 최은아 상임활동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박근혜 정부 들어 대한문 쌍용차 농성촌을 강제 해산하는 등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해온 상황에서 ‘집회는 불온하다’고 전제된 설문조사가 집시법 개악의 근거자료가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설문조사를 거부하고 5일 ‘조사 내용이 민의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의 공개 의견서를 문화부에 보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기본 인식 틀부터 잘못 전제된 설문조사’라고 우려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해당 설문지는 집회·시위를 ‘폭력이냐 평화냐’의 이분법적 프레임만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 사회가 현 수준에서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기보단, 집회·시위가 폭력적이고 과격하다는 고정된 전제를 갖고 짜맞춘 설문지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화부 국민소통실 정책여론과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최대한 공정하게 문항을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비판이 제기된 만큼 편향된 부분이 있는지 다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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