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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학대 상처’ 안고 있지만 우리도 꿈많은 십대예요

등록 2013-07-30 20:41

지난 4월 부산 ‘현주집 그룹홈’ 아이들이 체험학습 시간을 맞아 신문지로 풀죽을 쑤고 있다. 현주집 그룹홈 제공
지난 4월 부산 ‘현주집 그룹홈’ 아이들이 체험학습 시간을 맞아 신문지로 풀죽을 쑤고 있다. 현주집 그룹홈 제공
나눔해가 떴습니다(2013 사랑의 열매-한겨레 공동캠페인)
② 부산 그룹홈 ‘현주집’ 가족들
70㎏의 몸무게, 짧게 자른 바가지머리에도 여중생 은비(14·가명)는 소녀 티를 감추지 못한다. 오밀조밀 단정한 눈코입이 예쁘장하지만 자랑은 따로 있다. 유도선수인 은비의 허벅다리다. 올해 그 튼튼한 다리로 지역 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하지만 가족의 축하는 못 받았다. 아빠는 이혼 뒤 연락을 끊었고, 엄마는 약물복용으로 몇 번째 경찰에 붙잡혔다. 대신 은비를 보살피는 건 부산의 그룹홈(공동생활가정) ‘현주집’ 가족들이다.

지난해 현주집에 오기까지 은비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쓸쓸하고 지루했다. 집보다 거리에서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가출한 또래들과 어울려 ‘삥’을 뜯다 1년의 보호관찰명령을 받기도 했다. 은비가 경계급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것은 나중에야 드러났다.

은비만이 아니다. 현주집에 모인 6명의 아이들은 모두 가정에서 온전한 돌봄을 못 받았다. 부모에게 물리적·성적 학대를 겪은 아이들도 있다. 어린 아이들은 24시간 어린이집에 혼자 남겨졌고, 큰 아이들은 거리를 헤매다 현주집에 왔다. 한지숙(55·가명) 원장은 “부산 지역에 20개의 그룹홈이 있는데, 학대 가정의 상처가 큰 여자아이들이 우리 가정에 오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들 6명 중 5명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겪고 있고, 3명은 경계급 지적 장애, 1명이 3급 지적 장애를 앓는 것으로 진단받았다.

유도선수 14살 은비 등 6명
부모의 방임과 폭력에 생채기
대부분 ADHD·지적장애 앓아

‘유도 메달 꿈’ 지원 절실하고
언어·약물치료도 해야 하지만
빠듯한 살림에 한숨만 ‘푹푹’

은비와 함께 유도대회에서 메달을 딴 강희(15·가명)도 마찬가지다. 여덟살 때 돌아가신 아빠 얼굴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혼자 식당일을 전전하며 살림을 돌보는 엄마는 아침 8시에 출근하면 밤 10시까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돌볼 사람 없는 전셋방엔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가 뒹굴었다. 그 집에서마저 엄마와 함께 쫓겨난 강희는 현주집에 왔다.

2년 전 처음 왔을 때 13살의 강희는 이미 70㎏이 넘는 거구였다. 오래 방치된 아이들 특유의 비만 증상이었다. 엄마와 살 때 강희가 끼니로 즐겨먹은 것은 500원짜리 컵떡볶이다. 피시(PC)방에서 게임을 하다 배가 고프면 허겁지겁 컵떡볶이를 먹었다. “그땐 진짜 장난 아니었어요. 하루종일 게임만 했어요. 지금은 사람 됐죠.” 강희는 지난 날을 떠올리며 민망한 듯 키득거렸다.

지적 장애를 앓는 수연(13·가명)이는 친구가 남의 차에 불내는 것을 구경하다 경찰에 붙잡혀 현주집에 왔다. 지능이 낮아 그게 죄인지도 몰랐다. 수연이처럼 지적 장애를 앓던 부모는 아이를 보살필 처지가 못 됐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할 막내 수진(6·가명)이는 아직 세모 모양도 그리지 못한다. 입학은 뒤로 미뤘다.

아이들에겐 치료가 절실하다. 한 원장은 “아이들의 타고난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니라 학대와 폭력 등을 경험하고 부모와 교감하지 못해 정서 발달이 늦은 것이다. 심리치료와 체험활동을 통해 충분히 또래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가 지원한 상담치료사가 상근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지만 약물치료·언어치료 등 전문적인 치료 없인 공염불이다. 전문치료기관의 도움을 받으려면 1명당 적어도 한달에 30만원의 비용이 든다. 그룹홈의 빠듯한 살림으로는 꿈도 못꾼다.

9월 전국대회 출전을 앞둔 은비와 강희를 돌보는 일도 그룹홈 식구들은 걱정이다. 은비와 강희는 유도를 배우기 위해 다달이 20만원씩이 필요하다. 대회를 앞두곤 전지훈련 등을 위한 비용이 추가로 든다. 가난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정부의 도움은 없다. “이 아이들에겐 그 길뿐이거든요. 아이들에게 재능이 있어도 제가 끝까지 밀어줄 수 있을지….” 한 원장의 한숨이 깊었다. 부산/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아동·청소년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은 가정 해체나 학대 등을 겪은 아이들을 보살피는 소규모 생활시설입니다. 80~130㎡(25~40평) 규모의 가정집을 활용해,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위탁을 받은 일정 자격을 갖춘 일반인이 운영합니다. 최대 7명의 아이들이 함께 살기 때문에 가정에서 지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보호시설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낮습니다.

<한겨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와 손잡고 그룹홈 어린이·청소년들에게 나눔의 손길을 이어가려 합니다. 기부는 후원계좌 085-01-107501(농협/예금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또는 ARS기부 060-700-1212(한통에 2000원)로 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나눔이 가져온 아름다운 변화의 이야기는 모금회 누리집(chest.or.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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