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선천 기형을 안고 태어난 니세르는 엄마 젖도 제대로 물지 못했다. 울음소리조차 못 내고 음식물 소화를 잘 못 시키던 니세르는 9월25일(현지시각) 결국 숨졌다.
17일 ‘세계 빈곤 퇴치의 날’ 기획 아프리카 니제르의 고통
엄지손톱만한 손이 힘없이 꼼지락거렸다. 7월 세상에 나온 압둘 니세르는 여느 아이들과 달랐다. 울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축 처진 팔은 성인 남성 손가락 굵기였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각) 아프리카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에 있는 니아메국립대학 병원에서 만난 니세르는 배를 감싸는 근육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채 태어났다. 음식물을 잘 소화하지 못한다. 엄마가 젖을 물려도 소용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매력적인 영장류라는 타르시어 원숭이처럼 니세르는 큰 눈만 껌뻑였다. 눈동자가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힘 없어 엄마젖도 물지 못해
수술비 120만원커녕 약값도 없어
근친상간·만성적 식량부족 등으로
유전병·영양실조에 열 중 하나 사망 식민정부때 수출용 작물재배 강요
주식곡물 생산 적어 빈곤 가중
빈민, 먹을것 찾으려 쓰레기 뒤져 ■ 어른이 될 수 없었던 니세르 니세르가 입원한 병원은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채우고 있다. 사하라사막 남쪽 가장자리에 있는 니제르의 아이들은 영양실조나 유전병 등으로 병원을 찾는다. 전체 국토 126만7000㎢ 가운데 경작이 가능한 면적은 니제르강 유역을 비롯한 3%에 불과하다. 주식인 조가 매년 10만t 이상 부족하다. 영양실조와 기아가 늘 아이들을 위협한다. 춘궁기인 2~3월이면 니제르의 아버지들은 아이들의 무덤을 판다. 이슬람과 토착 부족민들의 전통종교가 결합한 독특한 문화 탓에 니제르인들은 유전병에도 취약하다. 니세르도 마찬가지다. 니세르의 엄마 할리마 압둘라이(19)는 14살에 결혼했다. 초경 뒤 바로 결혼하는 이슬람의 샤리아 율법에 따라서다. 그의 부족은 다른 종족과 ‘피 섞는 일’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압둘라이의 남편은 사촌이다. 니세르를 돌보는 의사 압둘 아지즈(42)는 “근친결혼으로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아이들은 의료 혜택을 못 받아 대부분 동네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료를 시도하다 상태가 더욱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현재 니제르의 유아사망률은 11%에 이른다. 농사를 짓는 니세르 가족의 형편이 넉넉할 리 없다. 우기인 6~9월 조 농사를 짓고 나머지 기간에는 아빠가 이웃나라인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등을 다니면서 행상을 한다. 병원비도 없다. 니아메에서 차를 타고 2시간 거리인 틸라베리주 테라 마을에서 무작정 병원을 찾아왔다. 5살 미만 어린이의 치료비는 무료지만, 약값과 병실 비용이 하루에 3000세파프랑(약 7200원)가량 든다. 니제르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은 보통 하루에 1000세파프랑(약 2400원)을 번다. 1000세파프랑은 니아메 시장에서 망고 2㎏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니세르의 엄마 압둘라이는 “니세르의 외할아버지가 무작정 니아메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외상으로 병원비를 빌린다. 아들을 수술하려면 50만세파프랑(약 120만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이 돈을 마련할지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 구조적 기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장기간에 걸쳐 식량 공급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경우를 ‘구조적인 기아’라고 부른다. 니제르가 속한 사하라사막 이남의 ‘사헬지역’은 경작지가 부족해 가난이 특히 심하다. 게다가 프랑스 등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주식이 아닌 수출 작물을 재배하도록 강요받으면서 빈곤이 심해졌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쓴 장 지글러 교수는 “아프리카 차드의 면화, 탄자니아의 카카오 등은 모두 식민지 농업 정책인 단일 경작의 산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니제르는 주식인 조가 아니라 땅콩이 주요 작물이다. 식민 모국이었던 프랑스로 보내기 위해 농업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 니제르는 세계 5위의 우라늄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이 역시 프랑스 회사가 주로 개발하고 거기서 생기는 부 또한 대부분 프랑스로 흘러간다. 관료들은 정부 재정을 쪼개 먹기에 바쁘다. 수도 니아메를 벗어나는 도로에는 밧줄 하나를 덜렁 엮어 둔 톨게이트와 검문소가 있는데, 공무원과 군인이 각각 6~7명씩이나 상주하며 세금을 축낸다. 정부군은 돈을 받고 팀을 이뤄 민간인 경호에 나서기도 한다. 검문소를 지나기 전에 있는 쓰레기장에서 소와 염소, 도시 빈민들이 모여 먹을거리를 찾는 광경은 공무원·군인들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이런 쓰레기장은 아침이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스모킹 마운틴’으로 불린다. 한 끼 때우기조차 벅찬 상태에서 일반인들이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면 치명적이다. 니제르 함달라이주 비니코베리 마을에 사는 자퍼루 무사(4)는 지난해 수레 근처에 서 있다가 떨어진 짐에 깔렸다. 왼쪽 어깨 아래 뼈가 부러졌지만 치료는 엄두도 못 냈다. 무사의 아버지가 부르키나파소 등에서 옷가지 행상을 해서 1년에 1만5000세파프랑(약 3만6000원)을 보내 주지만 먹을거리를 사기도 벅차다. 무사는 팔이 부러진 채 1년을 살았다. 유엔은 2005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약 8억5000만명 이상이 무사처럼 빈곤과 기아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 난민촌의 아이들 정치·경제적인 상황이 빈곤을 더하게 만드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해 말리 북부 지역을 점령한 이슬람 무장세력과 말리 정부군의 내전으로 생긴 난민 8000여명은 니제르 국경을 넘었다. 이들은 니제르 북부 망가이제 지역에 난민 캠프를 차렸다. 이들 가운데 절반은 10살이 채 안 된다. 전쟁터를 떠나도 안전하지 않다. 말리 정부가 프랑스에 군사적 개입을 요청하면서 내전은 끝났지만, 프랑스 정부를 도운 니제르에서도 이슬람 세력의 폭탄테러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난민촌에 터를 잡은 어린이들은 대부분 영양실조 위험에 놓여 있다. 말리에서 망치나 도끼 등을 만들어 팔았다는 이스타프 하메드(60)는 “전쟁과 테러 위협으로 2명의 부인과 아이들 7명을 데리고 국경을 넘었는데 말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이곳에서 1년 넘게 살고 있는 함마디살리 마리안(20)은 “국경을 넘은 지 1년이 넘었지만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모래 위에 나무판자를 깐 2㎡ 남짓한 천막이 그의 집이다.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벽은 없다. 아들 이스타프 리샤프(3)는 피부에 부스럼이 생겨 진물이 흘렀다. 그래도 리샤프는 아직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타르시어 원숭이처럼 작은 니세르는 지난달 25일, 기자와 만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니세르의 외할아버지는 이제 거리를 돌아다닐 필요가 없게 됐다. 니아메·망가이제(니제르)/글·사진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굿네이버스, 작년부터 3차례 긴급구호
“학교 건립 등으로 장기적 자립 도와야” “아직도 빈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고향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은 뜻깊죠.” 아흐메드 하비브(29)는 굿네이버스의 니제르 지부에서 일한다. 캐나다에서 국제경제학을 공부한 뒤 2009년 고향 니제르로 돌아온 그는 지난해 6월 우리나라의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가 니제르에 지부를 만들자 정규 직원으로 입사했다. 하비브처럼 외국에 유학한 뒤 고국으로 돌아와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는 이들이 늘면서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리카 나라들도 그나마 희망의 빛을 이어가고 있다. 니제르에도 국제구호 비정부기구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극심한 빈곤·기아에 처한 이들에게 긴급구호 활동을 벌이고 각종 보건·의료 사업과 식수 및 환경개선 사업 등을 펼쳐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노력한다. 32개 나라에서 구호활동을 펼치는 굿네이버스는 지난해 니제르에 지부를 만든 뒤 3차례에 걸쳐 긴급구호 활동을 진행했다. 이들은 수도에서 30여㎞ 떨어진 함달라이 지역에 있는 가가레, 코가니비니코아라, 야투바바코아, 발치웰 마을 등에서 교육 지원 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 학생 1500명에게 필요한 학용품을 지원하고 학교도 지어준다. 니제르의 문맹률은 71%에 이른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각)에는 함달라이 콜로조고노 마을에서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학교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한 기공식도 했다. 노재균 굿네이버스 니제르지부 사무장은 “초기에는 난민이나 빈곤지역에 지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더 장기적으로는 교육 사업 등을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니아메/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수술비 120만원커녕 약값도 없어
근친상간·만성적 식량부족 등으로
유전병·영양실조에 열 중 하나 사망 식민정부때 수출용 작물재배 강요
주식곡물 생산 적어 빈곤 가중
빈민, 먹을것 찾으려 쓰레기 뒤져 ■ 어른이 될 수 없었던 니세르 니세르가 입원한 병원은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채우고 있다. 사하라사막 남쪽 가장자리에 있는 니제르의 아이들은 영양실조나 유전병 등으로 병원을 찾는다. 전체 국토 126만7000㎢ 가운데 경작이 가능한 면적은 니제르강 유역을 비롯한 3%에 불과하다. 주식인 조가 매년 10만t 이상 부족하다. 영양실조와 기아가 늘 아이들을 위협한다. 춘궁기인 2~3월이면 니제르의 아버지들은 아이들의 무덤을 판다. 이슬람과 토착 부족민들의 전통종교가 결합한 독특한 문화 탓에 니제르인들은 유전병에도 취약하다. 니세르도 마찬가지다. 니세르의 엄마 할리마 압둘라이(19)는 14살에 결혼했다. 초경 뒤 바로 결혼하는 이슬람의 샤리아 율법에 따라서다. 그의 부족은 다른 종족과 ‘피 섞는 일’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압둘라이의 남편은 사촌이다. 니세르를 돌보는 의사 압둘 아지즈(42)는 “근친결혼으로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아이들은 의료 혜택을 못 받아 대부분 동네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료를 시도하다 상태가 더욱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현재 니제르의 유아사망률은 11%에 이른다. 농사를 짓는 니세르 가족의 형편이 넉넉할 리 없다. 우기인 6~9월 조 농사를 짓고 나머지 기간에는 아빠가 이웃나라인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등을 다니면서 행상을 한다. 병원비도 없다. 니아메에서 차를 타고 2시간 거리인 틸라베리주 테라 마을에서 무작정 병원을 찾아왔다. 5살 미만 어린이의 치료비는 무료지만, 약값과 병실 비용이 하루에 3000세파프랑(약 7200원)가량 든다. 니제르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은 보통 하루에 1000세파프랑(약 2400원)을 번다. 1000세파프랑은 니아메 시장에서 망고 2㎏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니세르의 엄마 압둘라이는 “니세르의 외할아버지가 무작정 니아메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외상으로 병원비를 빌린다. 아들을 수술하려면 50만세파프랑(약 120만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이 돈을 마련할지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 구조적 기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장기간에 걸쳐 식량 공급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경우를 ‘구조적인 기아’라고 부른다. 니제르가 속한 사하라사막 이남의 ‘사헬지역’은 경작지가 부족해 가난이 특히 심하다. 게다가 프랑스 등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주식이 아닌 수출 작물을 재배하도록 강요받으면서 빈곤이 심해졌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쓴 장 지글러 교수는 “아프리카 차드의 면화, 탄자니아의 카카오 등은 모두 식민지 농업 정책인 단일 경작의 산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니제르는 주식인 조가 아니라 땅콩이 주요 작물이다. 식민 모국이었던 프랑스로 보내기 위해 농업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 니제르는 세계 5위의 우라늄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이 역시 프랑스 회사가 주로 개발하고 거기서 생기는 부 또한 대부분 프랑스로 흘러간다. 관료들은 정부 재정을 쪼개 먹기에 바쁘다. 수도 니아메를 벗어나는 도로에는 밧줄 하나를 덜렁 엮어 둔 톨게이트와 검문소가 있는데, 공무원과 군인이 각각 6~7명씩이나 상주하며 세금을 축낸다. 정부군은 돈을 받고 팀을 이뤄 민간인 경호에 나서기도 한다. 검문소를 지나기 전에 있는 쓰레기장에서 소와 염소, 도시 빈민들이 모여 먹을거리를 찾는 광경은 공무원·군인들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이런 쓰레기장은 아침이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스모킹 마운틴’으로 불린다. 한 끼 때우기조차 벅찬 상태에서 일반인들이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면 치명적이다. 니제르 함달라이주 비니코베리 마을에 사는 자퍼루 무사(4)는 지난해 수레 근처에 서 있다가 떨어진 짐에 깔렸다. 왼쪽 어깨 아래 뼈가 부러졌지만 치료는 엄두도 못 냈다. 무사의 아버지가 부르키나파소 등에서 옷가지 행상을 해서 1년에 1만5000세파프랑(약 3만6000원)을 보내 주지만 먹을거리를 사기도 벅차다. 무사는 팔이 부러진 채 1년을 살았다. 유엔은 2005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약 8억5000만명 이상이 무사처럼 빈곤과 기아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 난민촌의 아이들 정치·경제적인 상황이 빈곤을 더하게 만드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해 말리 북부 지역을 점령한 이슬람 무장세력과 말리 정부군의 내전으로 생긴 난민 8000여명은 니제르 국경을 넘었다. 이들은 니제르 북부 망가이제 지역에 난민 캠프를 차렸다. 이들 가운데 절반은 10살이 채 안 된다. 전쟁터를 떠나도 안전하지 않다. 말리 정부가 프랑스에 군사적 개입을 요청하면서 내전은 끝났지만, 프랑스 정부를 도운 니제르에서도 이슬람 세력의 폭탄테러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난민촌에 터를 잡은 어린이들은 대부분 영양실조 위험에 놓여 있다. 말리에서 망치나 도끼 등을 만들어 팔았다는 이스타프 하메드(60)는 “전쟁과 테러 위협으로 2명의 부인과 아이들 7명을 데리고 국경을 넘었는데 말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이곳에서 1년 넘게 살고 있는 함마디살리 마리안(20)은 “국경을 넘은 지 1년이 넘었지만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모래 위에 나무판자를 깐 2㎡ 남짓한 천막이 그의 집이다.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벽은 없다. 아들 이스타프 리샤프(3)는 피부에 부스럼이 생겨 진물이 흘렀다. 그래도 리샤프는 아직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타르시어 원숭이처럼 작은 니세르는 지난달 25일, 기자와 만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니세르의 외할아버지는 이제 거리를 돌아다닐 필요가 없게 됐다. 니아메·망가이제(니제르)/글·사진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굿네이버스, 작년부터 3차례 긴급구호
“학교 건립 등으로 장기적 자립 도와야” “아직도 빈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고향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은 뜻깊죠.” 아흐메드 하비브(29)는 굿네이버스의 니제르 지부에서 일한다. 캐나다에서 국제경제학을 공부한 뒤 2009년 고향 니제르로 돌아온 그는 지난해 6월 우리나라의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가 니제르에 지부를 만들자 정규 직원으로 입사했다. 하비브처럼 외국에 유학한 뒤 고국으로 돌아와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는 이들이 늘면서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리카 나라들도 그나마 희망의 빛을 이어가고 있다. 니제르에도 국제구호 비정부기구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극심한 빈곤·기아에 처한 이들에게 긴급구호 활동을 벌이고 각종 보건·의료 사업과 식수 및 환경개선 사업 등을 펼쳐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노력한다. 32개 나라에서 구호활동을 펼치는 굿네이버스는 지난해 니제르에 지부를 만든 뒤 3차례에 걸쳐 긴급구호 활동을 진행했다. 이들은 수도에서 30여㎞ 떨어진 함달라이 지역에 있는 가가레, 코가니비니코아라, 야투바바코아, 발치웰 마을 등에서 교육 지원 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 학생 1500명에게 필요한 학용품을 지원하고 학교도 지어준다. 니제르의 문맹률은 71%에 이른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각)에는 함달라이 콜로조고노 마을에서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학교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한 기공식도 했다. 노재균 굿네이버스 니제르지부 사무장은 “초기에는 난민이나 빈곤지역에 지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더 장기적으로는 교육 사업 등을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니아메/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후원 안내>
10월17일은 세계 빈곤퇴치의 날입니다. 국제구호개발 민간단체 ‘굿네이버스’는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국내외 지역개발사업을 진행합니다. 굿네이버스 후원을 통해 한 아동의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 동참할 수 있습니다. 문의: 1599-0300, www.gn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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