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어머니들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목요집회 1000회 기념행사 무대에 올라 참석자들과 함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합창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000회 맞은 민가협 ‘목요집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의 ‘목요집회’가 16일로 1000번째를 맞았다. 1993년 9월23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목요집회’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내디딘 민가협 목요집회는 그 뒤로 한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 목요일 탑골공원 삼일문 앞을 지켰다.
1000회 목요집회에는 ‘고난과 희망’을 뜻하는 보랏빛 수건을 둘러쓴 어머니들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비전향 장기수 출신인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상임이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은 “개혁과 변화를 말하면서도 양심수들을 석방하지 않던 문민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열렸던 목요집회가 오늘로 1000회에 이르렀다. 이는 어머니들만이 아닌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민가협이 그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석방운동을 벌였던 비전향 장기수 출신 인사들은 이날 감사의 뜻으로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빨간 장미꽃 한송이씩을 전달했다.
21년간 한주도 거르지 않고 거리에
‘양심수 석방·국보법 철폐’ 싸우며
비정규직 등 인권 전반에 목소리
집회가 1000회를 헤아리는 동안 검은 머리 어머니들은 백발이 됐다. 김정숙(75)씨는 “21년 전 처음 목요집회를 시작했을 때는 지금까지 집회를 열게 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1989년 ‘임수경 방북’을 주도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임종석 전대협 의장(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어머니다.
민가협 회원은 900여명이다. 다들 평범한 어머니·아버지였다. 1992년 아들이 시국사건으로 구속된 뒤 민가협에 들어온 김성한(73)씨는 “평범하게 살았으면 이 고생 안 했다. 그런데 경찰한테 맞아 피범벅이 된 아이들이 굴비처럼 엮여 호송되는 걸 보고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었겠냐”고 했다.
사람들은 흔히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다 잡혀간 자식을 풀어달라며 정부를 향해 종주먹을 흔드는’ 어머니들로 민가협을 바라본다.
그렇지만은 않다. 민가협은 1980~90년대 시국·공안사건에 집중하던 활동에서 그 외연을 우리 사회 전반의 인권 문제로 넓혀왔다.
국제 인권회의에도 참석해 비중 있는 목소리를 내왔다.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5월광장 어머니회’를 초청해 함께 연 제39회 목요집회(1994년)에서는 “평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우리 공동의 아들·딸”이라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해 깊은 울림을 줬다. 비정규직 차별, 군 인권,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이주노동자, 철거민, 장애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까지 목요집회 1000회의 너른 품에 모두 담겼다.
다달이 민가협이 집계해 발표하는 양심수는 10월 현재 39명이다. 노동자, 철거민, 재야인사들이 대부분이다. 21명은 형이 확정됐고 18명은 재판을 받고 있다.
수백명씩 갇혀 있던 1980~90년대에 견줘 크게 줄었지만 민가협이 목소리를 내줘야 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김성한씨는 “국가보안법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써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이 더는 없을 때까지 목요집회를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이재욱 기자 uk@hani.co.kr
‘양심수 석방·국보법 철폐’ 싸우며
비정규직 등 인권 전반에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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