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인권·복지

명예퇴직 날벼락…신문 귀퉁이서 찾은 새 삶

등록 2014-10-21 20:06

시니어 통신
현직에서 은퇴한 지 벌써 14년이 흘렀다. 갑자기 명예퇴직 통보를 받았을 때 벼랑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이 들었다. 일거리를 잃었다는 무력감에 떨었다. 폐품으로 버려졌다는 좌절감은 못 견디게 서러웠다. ‘백수가 과로에 쓰러진다’고 마음만 급해 무작정 좌충우돌한 적도 있다.

신문이 길잡이가 됐다. 어느 날 ‘숲 생태 해설 강좌’ 기사를 보았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걸 어쩌나? “수강 신청이 다 찼어요. 다음 기에 신청하세요.” 여직원의 쌀쌀한 대답이 들렸다. 나는 사정했다. “대기 순번으로라도 부탁합니다. 꼭 부탁합니다.” 통사정했다. 지난날 은행의 임원이 아니라 시민강좌의 초라한 신청인으로 자세를 낮추어 끝없이 겸손해졌다. 과거의 권위의식, 순종하는 비서와 아첨하는 부하 직원도, 따스한 모닝커피도, 두툼한 보너스도, 푹신한 소파 위의 낮잠도 잊은 지 오래다. 오로지 배울 것은 바보스런 겸손이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배워야 하듯 현실 적응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수강자로 구제됐고 그로부터 제2의 인생이랄 수 있는 숲생태해설가로서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부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직장생활 중엔 읽을 수 없던 수많은 명저를 탐독했다. 독서량이 풍부해진 나는 자연을 소재로 시를 쓰고 산문도 썼다. 어쭙잖게 몇 번의 작은 상도 받았다.

요즘 나는 활기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 한마디로 계획적인 시간 관리를 할 만큼 바쁜 나날이다. 하루해가 기울어도 석양은 세상을 찬연하게 물들이듯 고즈넉한 노을에 잠겨 침잠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노년의 세월을 허송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술을 마신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즉흥적인 생활 태도로는 장구한 노년을 뜻있게 보낼 수가 없다. 끊임없는 탐구만이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에 접할 수 있다. 젊음은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열정에서 오는 것이다. 섬광처럼 번뜩이는 영감의 돛을 달고 꺼질 줄 모르는 호기심과 샘솟는 용기로 실망의 파도를 넘어 희망이 손짓하는 수평선으로 가야 한다. 제2의 풍요로운 인생이 거기 있으니까.

허창무 한겨레주주통신원(숲생태해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