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통신
현직에서 은퇴한 지 벌써 14년이 흘렀다. 갑자기 명예퇴직 통보를 받았을 때 벼랑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이 들었다. 일거리를 잃었다는 무력감에 떨었다. 폐품으로 버려졌다는 좌절감은 못 견디게 서러웠다. ‘백수가 과로에 쓰러진다’고 마음만 급해 무작정 좌충우돌한 적도 있다.
신문이 길잡이가 됐다. 어느 날 ‘숲 생태 해설 강좌’ 기사를 보았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걸 어쩌나? “수강 신청이 다 찼어요. 다음 기에 신청하세요.” 여직원의 쌀쌀한 대답이 들렸다. 나는 사정했다. “대기 순번으로라도 부탁합니다. 꼭 부탁합니다.” 통사정했다. 지난날 은행의 임원이 아니라 시민강좌의 초라한 신청인으로 자세를 낮추어 끝없이 겸손해졌다. 과거의 권위의식, 순종하는 비서와 아첨하는 부하 직원도, 따스한 모닝커피도, 두툼한 보너스도, 푹신한 소파 위의 낮잠도 잊은 지 오래다. 오로지 배울 것은 바보스런 겸손이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배워야 하듯 현실 적응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수강자로 구제됐고 그로부터 제2의 인생이랄 수 있는 숲생태해설가로서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부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직장생활 중엔 읽을 수 없던 수많은 명저를 탐독했다. 독서량이 풍부해진 나는 자연을 소재로 시를 쓰고 산문도 썼다. 어쭙잖게 몇 번의 작은 상도 받았다.
요즘 나는 활기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 한마디로 계획적인 시간 관리를 할 만큼 바쁜 나날이다. 하루해가 기울어도 석양은 세상을 찬연하게 물들이듯 고즈넉한 노을에 잠겨 침잠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노년의 세월을 허송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술을 마신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즉흥적인 생활 태도로는 장구한 노년을 뜻있게 보낼 수가 없다. 끊임없는 탐구만이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에 접할 수 있다. 젊음은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열정에서 오는 것이다. 섬광처럼 번뜩이는 영감의 돛을 달고 꺼질 줄 모르는 호기심과 샘솟는 용기로 실망의 파도를 넘어 희망이 손짓하는 수평선으로 가야 한다. 제2의 풍요로운 인생이 거기 있으니까.
허창무 한겨레주주통신원(숲생태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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