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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아직 생애 최고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등록 2014-10-28 20:17

은퇴전문강사 김경철씨가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표로 인생설계아카데미 강의실에서 은퇴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은퇴전문강사 김경철씨가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표로 인생설계아카데미 강의실에서 은퇴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은퇴전문강사로 ‘용도변경’하다
지난 21일 서울시 종로구 수표로 인생설계아카데미 강의실. 50~70대 수강생 12명 앞에 은퇴전문강사 김경철(60)씨가 섰다. “2년 전만 해도 나는 여러분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소개하자 수강생들의 눈이 커졌다. 김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31년간 동부건설에 재직하며 주택영업본부장까지 올랐지만 2011년 말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았다. “‘평생직장’에서 용도폐기 당했다는 자괴감, 31년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남은 게 없다는 허탈감, 수입도 명함도 사라졌다는 불안감, 빨리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엄습했다”고 토로하자 수강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치 못한 은퇴에 막막해하던 그가 떠올린 사람은 바로 경남 고성에 계신 부모님. 여든 넘어서 노인대학을 설립하고 학장과 문화유산해설사를 지금까지 겸직하고 있는 아버지(94)와 에어로빅·요가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어머니(90)처럼 100살까지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건축으로 치면 용도변경을 할 때라고 판단한 셈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의미있는 평생 현역의 직업을 찾기로 결심한 그는 아내에게 “인생 1막 30년을 위해 20년의 학습 기간을 거쳤는데, 남은 40년을 위한 교육에 3년은 투자해야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굳은 결심을 했지만 ‘대기업 임원까지 한 사람이 이런 교육을 듣는다’는 뒷말이 두려워 아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본 뒤에야 교육장에 들어서기도 했다. 희망제작소 행복설계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주말반·야간반을 가리지 않고 들은 교육이 2012년 한해에만 1064시간이다. 은퇴·인생이모작설계에 244시간, 창업·경영컨설팅에 400시간, 사회적 경제 등 교양에 420시간을 투자했다. 소상공인지도사·프랜차이즈경영지도사·웰다잉전문강사·은퇴코치·앙코르스쿨강사 등 자격증도 5개를 취득했다. 교육비는 200만원도 안 들었다. 베이비붐 세대를 위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해주는 교육을 주로 찾아 들은 덕분이다.

그 중에는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은 수업도 있다. 바로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웰다잉’과 자율분산형 조직 구조를 위한 소통 기술인 퍼실리테이션 교육이다. 수직적 조직에 익숙한 그는 존중과 이해가 인간관계의 핵심임을 새롭게 인식했고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큰 울림을 받았다. “은퇴자들이 당장 돈 되는 교육을 선호하는데, 은퇴 전에도 못 번 돈을 지금 쉽게 공부해서 벌 수 있겠냐”며 “죽을 때까지 조금씩이라도 벌려면 용도변경을 위한 동기부여가 우선”이라고 당부했다. 그한테 가장 힘들었던 과목은 컴퓨터. 회사에서 웬만한 업무는 비서들이 처리해준 바람에 기초가 부족했던 그는 두 딸한테서 컴퓨터를 배우다 괄시를 참지 못해 “혈육의 정을 끊자”는 소리까지 내뱉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주민자치센터를 찾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두 달가량 가장 기초적인 내용을 배우고 나서야 컴퓨터 교육을 정상적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지금은 강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물론 카페와 블로그까지 제작·운영하고 있다.

은퇴교육을 받으며 그가 애초 염두에 둔 진로는 경영컨설턴트였다. 10여년 임원 경험을 바탕으로 중소기업과 사회적기업 등에 컨설팅을 하면 잘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막상 부딪쳐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젊은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버텨내기가 쉽지 않아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던 중 우연히 자신의 적성을 발견했다. 지난해 6월 케이디비(KDB)시니어브리지센터에 교육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박상금 센터장이 ‘지금 한 이야기를 동료들한테도 들려 달라’며 강의를 권유한 것이다. 그는 퇴직 뒤 1년6개월간의 변화 과정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강의하기를 즐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강생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다. 은퇴 관련 강의를 은퇴하지도 않은 교수·전문가들한테서 듣다가 같은 처지의 또래가 한 이야기라 더 큰 용기와 공감을 받는다는 것이다.

대기업 임원서 해고된 김경철씨
막막함 뒤로 “새 직업 위해 3년 투자”
주말까지 한해 1064시간 교육받아
강의능력 인정받고 전문강사로
올 초부터 대학에 전문가과정 운영
은퇴 전 못번 돈 지금인들 벌리나
‘100살 시대 응원단장’ 목표삼아

은퇴전문강사라는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던 그는 자신을 위한 사업계획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을 컨설팅하며 체계적인 사업계획서를 만들라고 조언했음에도 정작 자신은 사업계획서 없이 좌충우돌한 것이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며 단순한 강사가 아니라 교육사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도전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이를 위해 시니어브리지아카데미 수료생 15명과 함께 액티브시니어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고려대 평생대학원에 액티브시니어 전문가과정을 제안해 올해 3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1기 수강생 30명 중에 박사가 6명, 석사가 15명이다. “이런 분들을 당신이 어떻게 가르치냐”며 아내가 걱정을 했지만, 인생 후반부에 대한 준비 부족은 학위와 상관없이 모두가 매한가지였다. 한 학기 수강료는 은퇴자들의 부담을 고려해 30만원으로 책정됐다. 전 강사진이 재능기부를 하고 있음에도 적자를 면치 못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공무원연금공단, 부산시 등 전국에서 요청해 오는 강의를 그가 부지런히 소화하며 적자를 겨우 메우고 있다.

“큰돈을 벌겠다는 게 목표가 아니라서 그런지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쁜데도 훨씬 행복합니다. 집에 가져다주는 돈이 거의 없어 아내에게 많이 미안한데 약속한 3년이 끝나는 내년 초부터는 조금이나마 집에 가져다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네요. 허허.”

사업계획서에 자신의 사명을 ‘100살 시대 응원단장’으로 설정했다는 그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가장 뜨거운 순간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로 강의를 매조지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김경철씨가 추천하는 시니어 교육기관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www.seoulsenior.or.kr

장년일자리희망넷 www.4060job.or.kr

서울시 장년창업센터 sba.seoul.kr/kr/sbst32h1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www.semas.or.kr

한국노인인력개발원 www.kordi.or.kr

여성인력개발센터 www.vocation.or.kr

서울시 평생학습포털 sll.seoul.go.kr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www.seoulmaeul.org

농식품유통교육원 edu.at.or.kr

귀농귀촌종합센터 www.returnfarm.com

창업넷 www.changupnet.go.kr

지역별 시니어비즈플라자

한국강사협회 www.kela.co.kr

한국골든에이지포럼 www.goldenageforum.org

한국방송통신대 프라임칼리지 prime.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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