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통신
‘“죽어간 친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서는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암울했던 1970년대 초 유신 반대 운동을 벌이다 의문사한 심오석·현승효 경북대 의대 민주열사 기념사업회를 추진하고 있는 신인식씨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경북대 의대 71학번인 신씨는 의대 졸업 뒤 의무공무원과 개업의 등을 거쳐 최근에는 이 일에 전념하다시피 하고 있다.’
10년 전 <한겨레>에 실렸던 기사다. 절친한 친구 현승효는 1972년부터 유신독재 반대 운동을 주도하다 75년 강제징집됐다. 제대를 앞둔 77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후배인 심오석도 내 가슴에 맺힌 한이다. 76년 수배망을 피해 도피하던 중 행방불명되었다. 아직도 그의 생사는 밝혀지지 않았다. 대학시절을 처절하게 보낸 내게 세상은 두려움을 넘어 저항의 대상이었다. 의대생이지만 학생운동가였고, 졸업 뒤엔 의사였지만 시민운동가였다. 남들은 화려한 스펙으로 한자리씩 했지만 과거 학생운동 한 전력으로 내 자리는 없었다. 어렵게 얻어도 곧 비켜나야 했다. 대학시절부터 유신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섰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 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법무부 서기관으로 특채되어 수감자 의료감정을 맡았지만, 소신에 어긋나는 일을 당해 2년 만에 사직했다. 의료감정을 하다 투옥되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응원으로 45일 만에 석방되었고, 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0년엔 북한 관련 지하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집행유예 3년과 자격정지, 보안관찰 3년으로 열흘 뒤인 29일에 형기를 마치게 된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저항과 투옥으로 수놓은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선친 때부터 이어진 것이다. 김구 선생의 지령을 받은 아버지는 영남지역에서 무장독립단체를 조직해 조국 광복을 위해 일제와 맞섰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형무소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60년 생을 마감했지만 이승만 정권에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2001년이 되어서야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과 함께 건국훈장을 받아 명예를 되찾고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내게 노년이란 없다. 아버지처럼 나는 정의로운 세상이 올 때까지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한겨레주주통신원이 된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일을, 나의 진정한 삶을 <한겨레>와 함께 시작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신인식(63) 한겨레주주통신원(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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