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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45년 배목수의 기록

등록 2014-11-25 20:15

시니어 통신
나는 전라남도 완도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라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다, 배, 고기잡이뿐이었다. 배를 처음 탄 것은 네 살 때였다. 청산도 앞바다는 너무 파래서 옷고름에 물이 들까 바닷물에 담가보곤 했다. 아버지에게 틈틈이 배운 배 수리 경험을 살려 1969년 배 만드는 일을 처음 시작했다.

지금처럼 늦은 가을날, 거문도에서 조업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평소 10여분이면 닿을 거리인데 1시간이 걸려도 육지에 닿을 수 없었다. 그때 호위라도 하듯 큰 저인망 어선이 다가와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우리 배가 육지에 닿자 그 배는 떠났다. 경황이 없어 그 배의 이름조차 보지 못했다. 생명의 은인이다.

이 일로 충격을 받아 배를 팔아버리고 육지에서 살아보려 했으나 배 만드는 일만 생각났다. 내가 주로 만든 배는 나무로 된 한선(韓船)이다. 지역 전시관이나 축제에 전통 배를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선보였다. 장보고선, 멍텅구리배, 황포돛배는 물론 각종 모형 배도 만들어 전시했다. 2004년에는 영화 <혈의 누>에 쓰일 배를 여러 척 만들었고, 길이 22미터의 거북선을 경남 고성 당항포에 건조했다. 2012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0호 조선장(造船匠)이 되었다.

건조 기술이 현대화되고 강화플라스틱(FRP) 선박이 등장하면서 목선 수요가 거의 없어졌다. 할 일이 줄어드니 생계를 잇기 어렵고 직업을 바꾸는 이가 늘어났다. 한때는 마을 공터에서 배를 만들면 동네 사람들이 구경도 하고 때론 농담도 하면서 참도 같이 나눠 먹었다. 배를 진수하는 날이면 다들 모여서 축하해주고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거들어주는 정겨움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먼지 난다’, ‘시끄럽다’ 등 별별 소리를 하며 민원을 제기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후대가 배 만드는 일을 재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많이 못 배워 글로 기록하지 못하는 장인들의 말을 모아 엮고 있다. 3년이 걸려 <배목수가 쓴 돛단배 이야기>(2009)를 내기도 했다. 배를 만들기 위한 준비부터 운항까지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이 책에 실었다. 오늘도 나는 전통 기능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책을 또 한 권 준비 중이다.

마광남(72) 한겨레주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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