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상담실
퇴직하고 한 달 뒤부터 외손주를 집으로 데려와 돌보게 되었습니다. 아이 재롱에 마음이 기쁘고 손주 돌보는 것이 퇴직 후 새로운 활동으로 느껴져 즐겁지만, 한편으로 아내에게 서운함이 들기 시작합니다. 식탁에 차려놓은 밥을 혼자 먹을 때도 있고 반찬 종류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손주 보는 것이 힘들어서 그러려니 하다가도 ‘이제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니 뒷전인가’ 하는 마음에 자꾸 불만이 생깁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여러 가지 기대를 합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부부가 공통으로 하는 기대는 ‘당신에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고 싶다’, ‘당신에게 기대고 싶고 안정감을 느끼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를 ‘부부간의 근본 기대’라고 부릅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경제활동에서 손주를 돌보는 활동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아내에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고 싶을 것입니다. 아내가 만사를 제쳐놓고 나를 우선 배려하거나 “당신이 제일이야”, “당신밖에 없어” 등의 표현을 듣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그 기대가 채워지기 때문이죠. 반대로 선생님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듯한 말을 듣게 될 때 아내에 대한 서운함이 생기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이런 마음은 ‘부부간의 근본 기대’와 연결된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반대로 아내분도 자연스럽게 선생님에 대한 기대가 있을 것입니다. 젊을 때와 달리 쉽게 지치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많이 사용되는 고된 양육으로 더욱 남편에게 기대고 싶을 것입니다. 남편이 모든 어려움을 척척 처리해 나가며, 양육에 힘든 자신을 이해해주고 품어주고 위로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대와 달리 챙겨야 하고 돌보아야 할 대상에 남편도 포함된다면 아내는 자신의 마음을 기댈 곳이 없어지는 셈이죠. 선생님이 서운하게 느낀 아내의 행동은 선생님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다기보다 남편이 이해해줄 것이라 믿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 먼저 부부가 서로에게 기대하고 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기대를 알아가는 것도 좋고, 종이에 기록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다 아는 듯해도 이 작업을 해보시면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다음에는 상대방의 기대 목록 중 현실적으로 내가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충족시켜줄 수 있는 목록 중 상대가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주길 원하는 목록을 정하고 그중 내가 실천하기 쉬운 것부터 먼저 해보세요. 더불어 충족시켜줄 수 없는 것들을 주제로 각자의 입장을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선생님의 불편감은 부부간의 친밀감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김연진 에코(ECHO)행복연구소 소장
김연진 에코(ECHO)행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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