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노원구 상계3ㆍ4동 사례관리서포터 최경구(왼쪽)씨와 오혜주(오른쪽)씨가 장애인인 큰아들과 사는 황기영(86)씨와 함께 골목을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송파 세모녀 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기준을 완화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늘어나게 됐다. 하지만 이 업무를 수행할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의 수는 제자리다. 지난해 박성효 새누리당 전 의원이 안전행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한 명이 담당하는 복지대상자가 5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07년 211.8명에서 2012년 492.1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업무 폭증은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의 잇따른 자살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시는 베이비붐 세대의 경험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보완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또는 사회복지기관 종사 경험이 있는 은퇴자를 ‘사례관리서포터’로 뽑아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의 사례관리 업무를 분담 지원케 한 것이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업무 폭증
서울시, 봉사 경력 은퇴자 등 투입
주민센터에서 취약계층 조사지원
20~30가구 방문하면 서너명 조사
두세번 거듭 만나 속내까지 확인
‘나이 든 사람’ 꺼렸던 주민센터들
연륜 가치 느끼고 “더 보내달라”
지난 14일 서울 노원구 상계3·4동 주민센터에서 사례관리서포터 최경구(61)씨와 오혜주(68)씨를 만났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지역 내 차상위계층 탈락자와 장애인 등급자 명단을 받아 해당 가구를 방문하는 게 그들의 업무였다. 최씨는 “하루에 20~30가구를 방문하지만 대부분 집을 비운 상태라 실제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가구는 서너 곳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겨우 만나도 제대로 대답을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이웃의 시선을 의식하는 어르신도 많아요. 여름에 방문한 어르신은 조사할 땐 ‘필요 없다’고 하시더니 우리가 집을 나서니까 몰래 따라와서 ‘다시 조사해달라’고 하시는 겁니다. 알고 보니 창문을 활짝 열어둔 상태라 이웃집에서 들을까봐 딴소리를 하신 거였어요.”(최경구씨)
두 사람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은 지난 5월에 만난 김아무개(65)씨. 두 달 전 뇌출혈로 쓰러지는 바람에 신체와 언어 장애가 온 상태였다. 그 전에 하던 야간 청소일도 못하게 돼 병원치료비는 물론 건강보험료까지 걱정하고 있었다. 자녀가 1남3녀나 있었으나 도움은커녕 돈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마침 서울시와 이마트가 식료품과 생필품을 6개월~1년간 제공하는 ‘위기가정 희망마차’ 제도가 있어 대상자로 추천해 6월부터 식료품을 지원받게 했다. 오씨는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사람 저 사람이 와서 똑같은 질문만 캐묻는다’며 달가워하지 않던 분이 지금은 길에서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해온다”며 “다른 분들도 대부분 두세 번 방문해야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주민센터에서 최경구씨가 황기영 할머니와 상담을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오씨는 지난해 사례관리서포터 1기로 뽑혀 7월 한 달간 직무교육을 70시간 받은 뒤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직무교육에서는 취약계층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제도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배웠다.
“지난해 1기로 뽑혀 처음 주민센터에 배치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젊은 공무원들은 ‘나이 든 사람들이 온다’고 달갑지 않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몇 달 일하는 걸 보고는 인식이 많이 좋아졌어요. 아무래도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을 만나서 말문을 트는 데에는 인생의 경험과 연륜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오혜주씨)
최씨는 지난 3월 2기로 뽑혀 직무교육 80시간을 받은 뒤 4월부터 오씨와 함께 근무하고 있다. 두 사람은 매주 월·수·금 오후에 출근해 5시간씩 근무한다. 월 활동비 40만원과 4대 보험을 제공받는 게 전부라 사실상 자원봉사에 가깝다. 사례관리서포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자 각 주민센터에서 서포터를 더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서울시는 지난 8월 예정에 없던 15명을 추가로 뽑기도 했다.
“기수별로 15명씩 뽑았는데, 공무원 출신은 20%도 안 되고 80% 이상이 일반 은퇴자들인 것 같아요. 면접 볼 때도 봉사 관련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평소 봉사활동 경험이 많아서 취약계층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 잘 아는 분들이 주로 뽑히는 것 같습니다.”(최경구씨)
최씨는 1977년부터 35년간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다 2012년 정년퇴직했다. 같은 시기에 퇴직한 동료들은 대부분 주차단속이나 경비 등의 업무를 찾고 있었는데, 최씨는 처음부터 복지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보훈병원의 봉사활동도 알아봤지만 시간이 안 맞아서 못하고 있던 차에 서울시 누리집에서 사례관리서포터 모집 공고를 보게 된 것이다.
“사실 장모님께서 5, 6년째 노환으로 처제 집에 누워 계신 상태입니다. 요양보호사가 오지만 오후 4시쯤 돌아가고 나면 가족들이 당번을 정해 돌보고 있어요. 또 어르신들이 양가 집안에만 10명 가까이 계시다 보니 노인복지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최씨는 2010년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다. 부부가 은퇴한 뒤 함께 노인복지관을 운영하자는 아내의 희망에 따라서다. 공무원으로서 마지막 일터가 서대문구 충현동 주민센터였다.
“예전에 퇴직자들을 동사무소에 민원담당관으로 배치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분들을 대하기 불편했던 기억이 있어서 주민센터 직원들에게는 제 경력은 밝히지 않고 자세를 낮춰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신 사례조사 가서는 동장 출신이라고 얘기할 때가 있어요. 우리 방문을 꺼리시던 어르신이 솔깃해하실 수 있거든요. 하하.”(최경구씨)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