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강원대 교수가 집필한 ‘불편하면 따져봐-논리로 배우는 인권 이야기’
“돈은 많이 버냐?” “결혼 안 해?” “애는 안 낳을거야?”
명절에 만나는 친척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들도 듣는 사람이 수치심을 느낀다면 성희롱에 준하는 인권 침해가 될 수 있다는 게 국가인권위원회의 해석이다. 최훈 강원대 교수(철학)는 이러한 발언들이 부나 결혼, 출산 등 사회적 관례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근거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에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사생활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한국 사회에서 주요하게 부각되는 인권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설하는 ‘인권 교양서’가 나왔다. 인권위는 4일 청소년을 위한 논리·논술 분야 교양서 필자로 널리 알려진 최훈 강원대 교수(철학)가 집필한 <불편하면 따져봐-논리로 배우는 인권 이야기>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책에서 한국 사회에서 흔히 통용되는 인권 침해적 발언들이 논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인권을 둘러싼 논쟁 가운데 최 교수가 꼽은 대표적 논리적 오류 네 가지를 소개한다.
① “너 종북 아니야?” - 한통속으로 몰아가기 오류
‘히틀러는 X를 주장했다. 따라서 X는 틀렸다’고 하는 주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X를 채식, 안락사 등과 바꿔보면 금세 알 수 있는 논리적 오류다. 한국에서는 북한과 같은 주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일이 대표적이다.
② “양심적 병역 거부? 저놈들 군대 가기 싫어 그러지” -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전쟁 반대 또는 평화라는 신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군대가기 싫은 것’이라며 왜곡시킨다. 이처럼 상대방의 주장을 무시하고 그가 실제로 하지 않은 주장을 비판하는 게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다.
“여성가족부와 페미니스트는 ‘꼴페미’(여성들이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권리만을 얻으려한다며 비난하는 말)”라는 생각 역시 여성가족부나 페미니스트들의 실제 주장과는 동떨어진 경험들을 토대로 ‘허수아비’ 주장을 만들어 공격하는 오류다.
동물에게 갇혀 있지 않을 권리를 주자는 동물권 운동가들의 주장에 “그렇다면 동물에게도 학교에 다닐 권리와 투표권을 주자는 말이냐”고 하는 것 역시 동물권 운동가들이 한 적이 없는 주장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③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동성애 반대한다” - 자연주의의 오류
자연적인 것은 사실 판단의 영역인데 여기에 ‘좋다’라는 가치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을 자연주의의 오류라고 부른다. 마치 자연의 섭리가 도덕적으로도 최고의 가치인 것처럼, 동성애 반대 근거로 삼는 동성애 혐오세력들의 논리가 여기에 속한다.
④ “전라도 사람은 뒤통수 잘 때리고, 대구에서는 사고만 일어난다” - 불충분한 통계의 오류
지역·인종 차별적 발언은 불충분한 통계의 오류나 편향된 통계의 오류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흑인은 게으르고 지저분한다’는 편견도 마찬가지다.
⑤ “사형수가 당신의 아들이라면” - 감정에의 호소 오류
사형제 폐지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찬반 진영 보두 감정에의 호소 오류에 빠지기 쉽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당신의 가족이 살해당했다면”, 반대쪽에서는 “당신의 가족이 사형수라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내세워 논리적인 판단을 가로막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