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통신
‘똑딱똑딱’ 시계 소리가 이 방 저 방에서 울린다. 우리 집에는 시계가 참 많다. 심장이 고장 난 시계, 다리가 부러진 시계, 얼굴이 망가진 시계, 배가 고파서 온 시계. 시계의 종류도 다양하다. 손목시계, 탁상용 시계, 벽시계 등 다양한 시계들이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거실 한쪽 구석에는 100년도 더 된 것으로 보이는 작고 낡은 시계가 있다. 이 시계는 손님이 “사연이 있는 소중한 시계이니 꼭 고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우리 부부는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쁘다. 낮에 금은방에서 시계를 거두어 오후에 집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하루 일이 시작된다. 수리하는 방의 청소부터 한 뒤 시계 보따리를 풀어 시계 하나하나를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다음날 새벽이 되곤 한다.
남편은 어린 시절 큰집에서 삼촌의 목말을 타다가 떨어졌는데 제때 병원 치료를 못 한 탓에 척추와 다리가 비뚤어져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불편한 몸으로 일을 얻는 건 쉽지 않았다. 남편은 시계 수리 일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고 학원을 다녔다. 금은방에 취직해서 몇 년 일을 했다. 그 뒤 의정부, 동두천, 포천의 금은방을 돌며 고장 난 시계를 거둬다가 집에서 수리를 하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이 시계 수리를 한다고 하니 주인들도 처음엔 일감 주는 것을 주저했다. 하지만 매일 성실하게 대하니 결국 믿음이 생겨 시계를 하나씩 주면서 고쳐 오라 했다. 잘되던 시계 수리 일도 외환위기를 비켜갈 수 없었다. 휴대전화까지 등장하면서 시계수리업은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우리는 꿋꿋하게 매일 시계를 받으러 다녔다.
인터넷 시대에 맞게 사업 방식도 바꿨다. 인터넷에 ‘시계수리박사’라는 카페를 개설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연계했다. 수리 문의가 점점 많아졌다. 그래도 만족할 만한 정도의 주문은 아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고 새로운 걸 도전하며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삶이 쉽게 나아지는 건 아니다. 세상이 바뀌어 시계수리업이 쇠퇴해 가고, 서민 경기는 나아질 줄 모르니 답답하다. 하지만 시계 수리를 배울 때 익힌 통기타로 동네 복지관에서 노래 부르는 남편과 함께여서 힘들지 않다.
박혜정(53) 한겨레주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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