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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카센터 실패 딛고 소상공인 조력자로 재기

등록 2014-12-23 20:12

지난 3일 이상화 컨설턴트(오른쪽 둘째)가 김순식 이사장(맨 오른쪽)의 아트워크 작품을 보면서 세라믹아트워크협동조합의 사업전략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지난 3일 이상화 컨설턴트(오른쪽 둘째)가 김순식 이사장(맨 오른쪽)의 아트워크 작품을 보면서 세라믹아트워크협동조합의 사업전략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중소기업청 표창받은 이상화 컨설턴트
지난 3일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인후리 세라믹아트워크협동조합에선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천 지역에서 도자기와 회화를 접목해온 도예 작가 5명이 대형 아트워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협동조합이었다. 고급시장과 대중시장 중 무엇을 먼저 공략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나뉘었다. 이때 한국비즈컨설팅의 이상화 컨설턴트가 나섰다.

“지금 논의를 지켜보니 작가라는 자부심을 가진 도예가와 생활자기를 양산하는 도예공이 혼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나 홍보물, 핵심 고객 목록을 봐도 협동조합의 정체성이 모호해 보입니다. 조합원들이 도예공과 도예가를 구분한 뒤, 하나에 집중해야 앞으로도 논란이 없을 것입니다.”

이상화씨는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소상공인협동조합 활성화 사업’에 선정된 세라믹아트워크협동조합을 몇달 동안 컨설팅 하고 있었다. 김순식 세라믹아트워크협동조합 이사장은 “다른 분한테도 컨설팅을 받았는데, 소상공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상화 컨설턴트가 우리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핵심도 잘 짚는다”고 평가했다.

증권사 첫 PB지점장·CFP 승승장구
카센터 창업…투자금 두 배나 소요
경영만 하고 기술 배울 생각 못해

마지막 ‘배수진’ 경영지도사 합격
부푼 희망도 컨설팅계 장벽에 좌절
소상공인 이력 덕 활성화사업 맡아
“마침내 찾은 내 업, 힘든 줄 몰라”

2005년부터 8년 동안 서울 강남에서 카센터를 운영했던 이씨는 “그 경험이 없었다면 컨설팅 하면서 엉뚱한 소리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센터 사장님이 되기 전 그는 잘나가던 증권맨이었다. 1987년 한신증권에 입사해서 1999년 증권사 최초의 프라이빗뱅킹(PB) 지점장이 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국내 최초 보험중개인, 국내 최초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등 관련 이력도 화려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자신이 판매한 펀드의 실적이 나빠지자 많은 고객들이 등을 돌렸다. 크게 낙심한 그는 2003년 코스닥 등록을 준비하던 애니메이션업체의 부사장으로 옮겼다. 그러나 회계상의 문제로 코스닥 등록이 무산되면서 이듬해 회사를 그만뒀다.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기 싫고 제 사업을 하고 싶어서 온갖 프랜차이즈 박람회를 다 가봤습니다. 그런데 40대 중반의 남자가 할 일이 많지 않더군요. 마침 강남에서 자동차 정비업체를 하던 지인이 보증금과 시설비 등 총 3억, 4억원을 투자하면 월 1000만원의 수입이 가능하다고 추천해주더군요.”

자동차 보닛도 못 열던 이씨는 카센터 창업을 결심하고 서울 역삼동에 약 500㎡(150평) 부지를 보증금 2억원, 월세 1320만원에 얻었다. 증권사에서 자산가를 많이 만났던 그는 손세차까지 제공하는 고급 카센터로 수입차 위주의 고가시장을 공략한다는 계산이었다. 고객이 쉴 수 있는 공간까지 고려해 2층 건물을 지으면서 투자금은 7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그때는 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비업의 전후방 산업을 지금 돌이켜보면 그 자금으로 판금 공장이나 중고차 판매 법인 등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았어요. 큰 숲을 봤어야 하는데 나무 한 그루만 본 거죠. 뼈저린 실패가 컨설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손세차 1위 업체를 목표로 직원들 일본 연수와 차별화된 세차 메뉴 제공, 독자적 캐릭터·브랜드 개발까지 추진했다. 개업 초기엔 그럭저럭 수익이 괜찮았다. 월 매출 7000만원, 순수익 1000만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8년 2층에 손해보험 대리점까지 개설하고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면 손세차를 무료로 제공했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2010년 손세차와 보험 대리점은 접고 정비업 하나만 남겨 이면도로의 50평 건물로 축소 이전했다.

“경기가 나빠지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사장이 직접 나섭니다. 직원들이 퇴근한 밤에도, 주말에도 일해서 매출을 맞춰야 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경영인으로만 정비업을 대했지, 정비 기술을 배울 생각은 전혀 못 했습니다. 사장이 될 자질이 없었던 거죠.”

2011년 아내가 “누가 추천하던데, 경영지도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힘들어하는 남편이 딱해 여기저기 묻고 다녔던 것이다. 경영지도사는 컨설팅 관련 유일한 국가자격시험이었다. 그런데 시험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카센터를 운영하면서 학원 수업을 듣는데, 돌아서면 기억이 나질 않았다. 2012년 4월 가족회의를 열어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으니 장사는 접고 시험에만 몰입하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다. 배수진을 친 이씨는 경영지도사 스터디 모임에 들어가서 공부에 매달렸다.

“8월 시험이 끝난 뒤 발표까지 두 달이 인생에서 가장 초조한 시간이었습니다. 떨어지면 내년 시험을 준비할 여유는 없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어요. 누리집에서 ‘합격’ 두 글자를 확인한 순간 ‘인생 2막의 시작’인 것 같아 정말 행복했죠.”

같이 합격한 동료 두 명과 함께 한국비즈컨설팅을 창업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자격증은 출발의 기회만 줬을 뿐, 경력이 전무한 새내기 컨설턴트가 진입하기엔 컨설팅 시장의 장벽은 너무 높았다. 집에 손 벌리기가 미안해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가며 버텼다. 지난해 2월 ‘소상공인협동조합 활성화 사업’ 공모가 떴다. 지원하면서도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이 소상공인 경험 8년만 보고 그를 뽑았다. 컨설턴트 대부분이 대기업이나 학계 출신이었기에 카센터 창업 이력이 눈에 띈 것이다.

“지난해에만 협동조합 15곳을 컨설팅 했어요. 지방에서 자정 넘어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라 졸음운전으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찾은 ‘내 업’인 것 같아 힘든 줄 모르겠어요. 올해 들어서는 매달 500만원은 집에 갖다주고 있어 가장 체면도 세웠습니다.”

소상공인협동조합을 열정적으로 육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씨는 지난 4일 서울 엘타워에서 열린 ‘2014 소상공인 협동조합 콘퍼런스’에서 중소기업청장 표창을 받았다.

이천/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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