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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상담실
향수와 욕구의 분출…장보기 줄여 한 대씩 정리해야
향수와 욕구의 분출…장보기 줄여 한 대씩 정리해야
Q: 자식들은 모두 출가해 부부만 살고 있는데, 집에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합쳐 3대나 있습니다. 게다가 냉장고마다 뭔지 모를 것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아내가 특별히 낭비벽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냉장고에만 이런 과소비를 합니다. 자식들이 다녀갈 때마다 양손에 잔뜩 싸줘서 보내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런가 이해를 해보려 해도 잘 안됩니다.
A: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쇼핑을 ‘이성적인 활동이 아니라 죄책감에서 환희에 이르는 다양한 감정들이 내포된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인간은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비교적 이성적이지만 당장의 보상 또는 손실 앞에서는 격정에 휩싸여 충동적으로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주장은 여러 실험 결과를 토대로 합니다. 굳이 실험 내용을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자신이 쇼핑하기에 앞서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젊은 시절 결핍을 경험하고 지독한 절약을 감수했던 어머니 세대도 쇼핑 앞에서 감정적인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50, 60대 여성들이 유독 식재료 할인에 흥분하는 경우가 많음을 발견합니다. 특히 이 세대 여성들은 김치에 대한 추억이 있고 김장독에 대한 향수가 강한 것 같습니다. 땅속 김장독에 한가득 담가 두었던 김장김치와 김장독에서 잘 익은 김치를 꺼내 도마에 얹어 아삭아삭 써는 장면은 젊은 시절 추억 중 하나입니다.
김치냉장고 광고에는 이러한 추억과 연결될 만한 화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제 허리띠 졸라맬 일도 없다는 안도감과 그동안 자식 키우며 억제했던 욕구를 김치냉장고로 보상받으라고 속삭입니다. 삼성전자가 5년간 김치냉장고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2~3주 사이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감성 광고와 더불어 할인 전략, 새 냉장고를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한데 어우러져 스릴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더 이상 음식에 대한 취향과 기호, 필요 등은 개의치 않게 됩니다. 그렇게 채운 냉장고는 자식이 방문했을 때 양손을 가득 채워주는 것으로 비워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님의 배려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냉장고 또한 가득 차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에 다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될 때 죄책감도 동시에 가지면서 쓸쓸한 결말이 이어집니다.
이 문제의 해법은 간단합니다. 작정하고 냉장고를 비우기 위해 한동안 장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냉장고를 비우면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냉장고를 한 대씩 정리해야 합니다. 추억과 보상심리의 격정에 휩싸인 소비는 결국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잔뜩 보관하게 만들거나 내 손을 거쳐 자녀들 쓰레기통으로 연결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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