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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엄마의 늦바람

등록 2015-01-06 19:47수정 2015-01-07 23:16

시니어 통신
서른 후반에 홀로 되셔서 4남매를 키운 여인, 지난 시절엔 흔한 일이었다. 지금 칠순 중반을 넘어서 완전한 노년에 이르셨다. 노년이란 늙음을 한탄하며, 지난한 일들을 구슬피 씹어서 주변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잘 늙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귀요미’라 불릴 만큼 잘 늙어 귀엽고 예쁜 이 할머니는 매일 아침 목욕을 다녀오고, 당뇨 합병증을 막기 위해 꾸준한 산책을 한 뒤, 10년째 노인복지관을 향한다. 치매 예방 수업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래교실, 영어와 일어 수업, 요가까지 주 5일을 꽉 채운 뒤에도 때론 다른 복지관도 기웃거리고, 성당의 노인대학까지 드나든다.

언젠가 자식들이 늙은 부모를 싫어하는 이유가 아픈 얘기와 돈 얘기 때문이라는 통계를 봤다. 지극히 당연한 이 상황을 자식들은 듣기 싫어한다. 그런 걸 눈치챈 요즘 노인들은 스스로 자기계발에 열심이다. 청소년들만 바쁜 게 아니다. 집에서나 사회에서 지청구를 받지 않으려 시간을 촘촘히 계획하여 스스로 젊음을 증명하려 애쓴다. 참 고마운 노년의 노력이다.

어머니는 인터넷까지 섭렵했다. 인터넷 노래교실 카페 댓글 1위다. 이렇게 아직도 팔팔한 어머니가 나에게는 ‘그냥 어머니’인 줄 알았다. 어머니가 한 여자, 나와 동일한 여성이라는 자각은 참 늦게 왔다. 푸르다 못해 터질 듯 창창했을 어머니의 젊음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나 외롭고 서운했을까. 4남매가 한 번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던 어머니의 청춘은 지금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시 올 수 없는 그 시절 어머니의 고독과 체념은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야 잊었던 숙제처럼 생각났다.

4남매에게 증여한 청춘, 한없이 외롭고 쓸쓸했던 어머니가 드디어 늦바람이 났다. 매료된 남자가 하필이면 외국인이다. 거기다 짝사랑이라니. 안드레 리외(안드레 류). 네덜란드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지휘자가 생애 최초로 발견한 이상형이란다. 어느 한때로 돌아간다면 결혼까지 하고 싶단다. 고목에도 봄이면 새순이 돋듯 늙은 어머니의 가슴에도 사랑의 싹이 움튼다는 걸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엄마, 파이팅!” 짝사랑도 사랑이어서 나는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김미경(54) 한겨레주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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