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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나의 시간

등록 2015-01-20 19:59

시니어 통신
누구도 자신한테 남은 시간을 정확히 모른다. 생명은 공평하고 일정하게 주어지는 반영구적인 개인별 시계다. 때론 덧없이 멈추기도 하고, 때론 행운처럼 길다. 시간의 값을 결정하는 권리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갑오생인 나보다 12살 많은 언니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언니, 전 아직도 사십대인 줄 착각하며 살아요.” 그들의 대답은 놀라웠다. “누구는?” “그럼 언니들도?” “그래. 우리도 오십대인 줄 착각하며 산다.” 이 언니들은 빽빽한 스케줄로 늘 바쁘게 산다. 이건 삶이 재생되지 않는 한계에서 오는 회귀본능 같은 것이다. 옛날로 돌아가 지금 깨달은 바를 실천하고 싶은 후회에서 오는 것이다.

젊은 날, 시간이 끈질긴 채권자처럼 지겹기도 했다. 삶의 정체성이 혼재된 스물에서 서른이 그랬다. 이후 나만을 위한 내 삶의 협소한 궤도에 대한 회한으로 무거웠다. 끊임없이 이탈을 꿈꾸며 서른에서 마흔이 되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고, 날로 가난해지며 행복을 발견했다. 물질적 탐욕에서 정신세계로의 전환을 시작한 마흔에서 쉰은 소중했다. 궁핍은 불편한 것일 뿐 근원적인 불행은 아니었다. 갑년이 되자 결핍의 미학을 완성했다. 다만 남한테 베풀 처지가 아니어서 참으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안타깝고 슬프다.

충분히 할머니 소리를 들을 나이지만 정신은 건재하다. 가끔 시낭송 요청을 받으면 의도적으로 장시(長詩)를 선택한다. 스러진 뇌세포들을 일깨우려는 건강한 시도다. 크게 애쓰지 않아도 저장되는 자족감과 타인의 칭송은 비타민처럼 고소하다. 마음은 젊은 날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시야는 조금 길어졌다. 천성은 잘 변하지 않아서 편협함은 아직 가시울타리처럼 날카롭다. 대신 넉살이 늘어나고 유머가 풍성해서 대충 앞가림을 한다.

다양한 풍족함을 누리지 못하는 내가 가진 자산은 한시적인 시간뿐이다. 이미 저녁노을이 번지는 해거름이다. 나는 나의 시간에 대해 나 자신에게조차 인색하다. 조금의 방임에도 나를 구박한다. 그래서 타인을 위해 쓸 여력이 그다지 없다. 이것이 지독한 자기애임을 안다. 걷지 않아도 내일로 나아가고, 세지 않아도 먹는 나이는 배신을 모른다.

이미진(61·문인) 한겨레주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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