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은퇴는 일로부터의 자유, 시간으로부터의 자유, 행동의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은퇴하고 몇 년 되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제약이 따라왔습니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행동반경도 좁아지고 금전적으로도 아껴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소비도 힘들어졌습니다. 스스로 환경에 구속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A: 인간다운 삶의 첫째 조건은 자유입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해보고 싶은 것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것이 자유입니다. 반면 구속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며,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할 수 없으며,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통제를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경제적인 능력과 건강, 사회적 관계 등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노년의 외로움은 자유의 박탈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건강의 문제, 은퇴에서 오는 사회관계망의 상실 등은 어쩔 수 없이 혼자됨을 강요합니다. 이런저런 제약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울 수 없게 되면서 내 인생을 내가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으로 인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통제가 불가능하고 계획이 불필요한 노년이 외로움을 더 느끼게 합니다.
인지심리학자 박경숙 박사는 <문제는 무기력이다>에서 노인의 무기력한 태도와 생존의 연관성에 관한 조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페라리 박사는 미국 중서부에서 양로원 입원 신청서를 낸 65살 이상 55명의 여성을 조사했습니다. 양로원 입원 외에 다른 선택 여지가 없었다고 답변한 노인 17명 중 8명은 입원한 지 4주 안에 세상을 떠났고, 10주 뒤에는 한 명만이 생존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선택이 가능했다고 답변한 노인 38명 가운데에서는 첫 4주 동안 사망자가 단 한 명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노인이 겪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사망에 이르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인 자살의 경우에도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의 문제, 가정불화 등을 주요한 원인으로 꼽습니다. 자유가 없는 환경,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가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할 수 있었지만 안 한 것’과 ‘하고 싶었지만 못한 것’의 차이는 노년의 심리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의 노후를 자유로운 환경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노후설계입니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노후설계가 나를 얼마나 자유롭게 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 또는 최소한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김현기 신한금융투자 네오(Neo)50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