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통신
지난 설날 강원도 양양의 부모님 집에 내려갔다. 집에 아무도 없어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바로 앞 식당으로 오라고 하셨다. 가보니 일주일 전 식당을 개업하고 아들 몰래 장사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평생 일만 해오신 분이다. 낙산사 관리인을 시작으로 연탄 배달, 사방공사, 기념품 판매, 건어물 판매, 보일러 공사, 목수, 여행사 가이드, 건축청부업, 유람선 보트 등 15개 이상의 직업을 전전하며 평생을 살아오셨다. 가족 생계를 위해서였다.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오니 아버지는 횟집을 개업해서 운영하고 계셨다. 그동안 쌓아온 인맥과 수완으로 장사가 잘되었다. 나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횟집 손님이 늘어나면서 직장생활 5년차에 귀향하기로 결정했다. 관광지임에도 1년 내내 손님이 많았다. 식당도 확장했다. 23년 동안 부모님과 한집에 함께 살면서 행복했다. 아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미시령터널 개통과 서울~인제 4차선 도로 완공으로 관광객 이동 경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 낙산을 경유하던 관광객들이 미시령을 거쳐 속초 콘도촌으로 이동하면서 손님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결국 지난해 1월1일 폐업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시니어 아들이 부모를 돌봐드리지 못하다 보니 부모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70대 후반의 나이에 식당을 다시 창업하셨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는 소득활동이 있어야 한다. 예전처럼 하루 세끼 밥만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문화·취미생활 등 생계비 외 비용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노인세대는 건강 문제로 병원비 지출까지 급증한다. 과거 부모님 부양에선 없었던 비용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위기다. 국가적인 지원 없이 스스로 자활하라는 권장은 방치이자 유기다.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산업사회의 부모 세대, 아이와 부모님 중간에 끼어서 재산이라고는 집 한 채 가지고 100살을 준비해야 하는 베이비붐 세대, 캥거루족이라고 불릴 만큼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아이 세대. 이런 3중 세대 구조 가운데 위태롭게 서 있는 우리 시니어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망망대해에 서 있는 것 같다.
조건섭(54) 리봄 시니어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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