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통신
지리산 청학동 계곡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런 연유에선지 도회에 살면서도 흙을 밟고 만지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으나 일상에 밀려 잊고 있었다. 수도권에서 산 지도 반세기에 가깝다. 고향을 방문하거나 휴일에 도심을 벗어나 야유회와 산행을 하는 경우 외에는 흙을 직접 밟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와 직장을 오가는 길도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고 일터의 건물도 매한가지였다.
휴일이면 사람들은 들로 산으로 쏘다니고 싶어 한다. 도회 주변의 산들이 주말이면 혼잡하다. 흙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람의 본능은 흙을 향한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행태를 연구한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높은 층에 사는 아이일수록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욕구가 높다는 내용이었다. 1층에 사는 아이보다는 2층, 2층에 사는 아이보다는 그 위층의 아이들이 바깥에 많이 나간다고 했다. 흙과 멀어진 아이들이 흙과 가까워지려 한다는 설명이었다. 흙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기운을 북돋워준다. 땅과 멀리 떨어진 높은 층에서 화초가 잘 자라지 않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지금은 도심을 벗어난 외곽에 지은 자그마한 집에서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텃밭을 가꾸며 산다. 지금 사는 곳은 논밭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행정상으로는 고양시에 속하나 시 외곽이고 분위기가 농촌과 같다. 대중교통은 걸어서 10분이나 20분쯤 나가야 탈 수 있고 띄엄띄엄 오간다. 자그마한 주택을 짓고 앞마당에 꽤 넓은 텃밭을 만들었다. 흙냄새가 좋아 비닐을 씌우지 않고 맨땅에서 채소를 가꾼다. 잡초를 뽑아야 하는 성가심도 있으나 손끝에 묻어나는 흙의 감촉을 좋아해 비닐을 씌우지 않았다. 시골 태생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흙과 친해져 있다. 49살에 평생직장에서 해임되었을 때 생업 수단으로 자그마한 회사에 조경관리사로 재취업해 일한 적도 있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하면서 흙과 또 다른 인연을 키웠었다. 나에게 흙은 곧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환갑이 지나서도 그 그리움은 잊을 수 없었다. 일상생활에 불편한 점이 있지만, 시골 같은 마을로 이사해 텃밭을 가꾸며 삶을 즐기는 이유다.
변용도(65) 시니어블로거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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