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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옆집 찾는 시외전화 올때마다 벌어진 소동

등록 2015-06-30 19:53수정 2015-07-01 15:13

시니어 통신
50년도 더 된 시절의 이야기다. 서울 강남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지금의 북촌 지역에 살았다. 초등학교도 여학교도 다 그 동네에서 다녔다. 버스 타고 학교 가는 게 나의 소박한 소원이었는데 그 꿈은 대학을 가면서 겨우 이루어졌다.

우리 집은 비슷비슷한 한옥 형태를 하고 있던 많은 집 중 한 집이었다. 장독대를 증축했는지 몰라도 장독대 하단부가 목욕탕이었다. 샤워를 하려면 부엌을 통과해서 실외에 있던 목욕탕까지 나가야 하는 몹시 희한한 구조였다. 그런데 이 장독대에 올라서면 옆집 사람들과 마주 보며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장독대는 주로 엄마의 사교장이 되었다. 옆집에 사는 아줌마는 엄마의 동네친구였는데 그 남편분의 직장은 강원도의 ‘황지’라는 곳이었다. 아빠와 가족이 따로 떨어져 살고 있던, 그야말로 원조 기러기 가족이었다. 나는 몇가지 웃지 못할 기억 때문에 황지라는 지명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우리 집 안방에는 당시에 흔치 않던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무척 무겁고 까만 전화기였다. 당연히 통화의 모든 내용은 안방에 계신 부모님의 검열 아닌 검열을 받아야 했지만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옆집 엄마 친구 황지댁은 전화가 없었다. 그런데 무슨 중요 상황인지 몰라도 종종 황지에서 시외전화가 왔다. 일단 황지에서 전화가 오면 우리 집에 비상이 걸렸다. 누가 전화를 받든 상관없이 맨발로 장독대로 한달음에 뛰어올라가 전화 온 사실을 옆집에 알려야 했다. 오직 아버지만 직접 장독대로 올라가지 않고 우리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장독대가 마치 봉화대라도 되는 양 긴박한 양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시외전화가 뭐라고 그렇게들 긴장해서 설쳤는지….

그러면 옆집에서 우리 집 안방까지 마구 뛰어와서 전화를 받았다.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도 족히 10분은 걸렸을 것이다. 그렇게 뛰어와서는 남의 집 안방인데도 있는 목청껏 소리 높여 통화했다. 시외전화라는 긴박함으로 모든 것이 양해가 되는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추억이고, 코미디 소재로나 다루어질지 모를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일이 요즘 유행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원조가 아니겠는가.

이인숙(63) 시니어블로거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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