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21일 <한겨레> 인터뷰
복지부 사퇴 압박, “사퇴할 여건 조성 안되면 안할 것”
복지부 사퇴 압박, “사퇴할 여건 조성 안되면 안할 것”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비연임 결정으로 보건복지부와 갈등을 겪고 있는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1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홍 본부장이 국민연금 내부 투자위원회 결정이 나기도 전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만난 일은 대단히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홍완선 본부장과 갈등의 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사안에서 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앞서 홍 본부장은 지난 5일 국민연금공단 전주 본사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결정 이전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7월7일 이 부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삼성 특혜 논란으로 국민연금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며, 홍 본부장의 연임에 반대해왔다.
최 이사장은 복지부의 연이은 사퇴 압박과 관련해선 “사퇴를 할만한 여건이 조성되고 필요하다면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안할 것”이라며 “어제 복지부에 내가 제안하는 내용을 전달했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존 상임이사(홍완선 본부장)에 대한 연임결정에 대한 권한은 나에게 있다. 이런 얘기를 장관에게도 드렸더니 ‘이미 결정됐으니 협조해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아울러 최 이사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분리 독립 건에 대해서는 복지부 등 정부 쪽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 정진엽 복지부 장관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 어제(20일) 저녁 7시부터 50분 가량 정 장관과 만났다. 장관의 요청으로 만남이 이루어졌다. (공개하긴 어렵지만) 나에게 하나의 제안을 해왔고 내가 한번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다. 하루정도 말미를 주면 답변한다고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 세수를 하고 나서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도저히 제안받은 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다시 그날 밤 10시 넘어서 복지부 당국자와 만나서 2~3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미안하지만 장관 제안을 받을 수가 없다고 전했고 내가 새로운 안을 제안했다. 아직 밝히기는 어렵지만 오늘 아침에 장관에게 보고가 들어갔을 것으로 본다. 이번에는 내가 하루 말미를 줄테니 내 제안에 대한 답변을 주면 좋겠다고 했고 현재 기다리는 중이다.
- 복지부는 홍완선 본부장에 대한 비연임 결정이 잘못됐다고 보는데.
= 내가 무슨 월권을 하고 항명을 했다는 건지 어이가 없다. 우리 기금이사 뿐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의 상임이사는 임기가 2년+1년으로 돼 있다. 2년 간의 실적을 평가해서 1년 더 할지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이 권한은 전적으로 기관장에게 부여돼 있다. 원래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장의 자율성 확보를 해준다면서 이렇게 해줬다. 무슨 뜻이냐면, 홍완선 본부장에 대한 연임 결정도 나한테 권한이 있다. 물론 새로 이사를 뽑을 때는 장관과 상의하도록 돼 있다. 이 내용은 복지부도 확인을 해준 대목이다. 홍 본부장에 대한 비연임 결정은 그동안의 실적이나 관리능력, 경영철학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연임은 어렵겠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개인적 감정에 따른 결정이 아니었다.
- 장관에게 이런 뜻을 명확히 전달했나?
= 절차를 자꾸 안지켰다고 하길래 장관에게도 그렇게 볼 사안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정 장관이 “이미 결정이 됐으니 협조해달라”고 하더라. 내가 공직을 여러번 거친 사람이다. 절차도 잘 알고 복지부와도 40일간 협의가 있었다. 더 이상 무슨 상의를 해야 하느냐.
- 외부에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를 두고 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 문제는 이렇다. 내가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를 두고 홍 본부장과 서로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지난해부터 국민연금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결정할 일이고 그에 따라야하는 것이지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게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가져왔다. 내가 이전부터 반대한다고 한다는데 그렇지 않다.
- 그렇다면 왜 반대 입장으로 알려져있는건가?
= 내가 그런 주장은 했다. 기금과 제도를 분리하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지배구조와 운영조직에 대해서는 세계 각국의 많은 사례가 있다. 그걸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전문가 토의도 거쳐서 중지를 잘 모아야 한다는게 내 바램이었다. 다만 공사화가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은 표명해왔다.
- 홍 본부장과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결정 관련해서도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안다. 어떤 상황이었나?
= 투자의사결정은 이사장이 일체 관여를 하지 못한다. 통상 국민연금 내부 투자위원회에 올린 안건들에 대해서 사후적으로 열흘 지나서야 결제를 하면서 알게되는 구조였다. 삼성물산 건 뿐 아니라 모든 사안이 그렇다. 홍 본부장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것도 10월5일 국감을 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일일이 만남을 나에게 보고할 의무는 없지만 대단히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봤다. 당시 합병 건은 전세계에서 지켜보는 눈들이 많았던 사안이다. 굳이 만나려면 투자결정이 다 완료되고 나서 만났어야 하는데 투자결정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왜 만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더라. 이것도 일종의 ‘갑질’이 아닌가.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설령 만나서 특별한 이야기를 주고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왜 굳이 만나서 (국민연금이) 오해를 사야하는지 모르겠다.
- 앞으로 이사장의 거취는 어떻게 되나?
= 고민중이다. 당국과 의견을 교환하는 시기라고 봐달라.
- 홍완선 본부장과 동반 퇴진할 가능성은 없나?
= 홍완선 본부장은 이미 연임 불가에 대해 결정이 완료된 상태다. 본인에게도 통보가 됐고. 남은 과제는 새로 이사를 뽑는 것이다. 내가 위원장이 되는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공고를 내야 한다. 홍완선 본부장은 내가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면 남아있기가 어렵다.
- 복지부는 비연임결정 재검토를 요청한 것 아닌가
=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다. 현재로서는 결정을 번복할만한 뚜렷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수용할 수 있을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 자진사퇴할 뜻은 전혀 없다는 건가?
= 내가 자진사퇴하는 게 좋겠다고 여겨지면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안한다. 어떤 결정을 하든지 간에 세가지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있다. 첫번째는 내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이 유지돼야 한다. 두번째는 공단에 7200명의 직원이 있다. 1만400개의 눈동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 기분 내키는데로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임명권자가 내게 부여한 임무를 잘 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최고경영자로 도저히 안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창피하지만 나가겠다. 하지만 지금 벌어진 이슈는 그런 측면이 아니다. 월권이니 항명이니 해서 땅에 떨어진 인격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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