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28 11:23
수정 : 2018.06.28 21:21
누르, ‘전재산 8배’ 지갑 그대로 경찰서에
“돈 한푼 없어도, 남의 돈 가져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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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제주도 버스 안에서 주인 없는 지갑을 주워 경찰 지구대에 가져다 준 예멘 난민 누르.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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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무사증 입국을 통해 들어온 뒤 난민신청서를 낸 누르는 지난 5일 오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을 나와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버스 좌석 위엔 갈색 지갑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누르는 27일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지갑을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두툼했고, 틈새로 화폐가 빼곡하게 꽂혀 있는게 보여 돈이 많이 들어있음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사람이 애타게 찾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최대한 빨리 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지갑을 주운 장소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휴대전화로 버스 번호를 찍은 뒤 버스에서 내렸다. 잃어버린 장소를 상세히 알려주면 주인을 찾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판단이었다. 택시를 탄 그는 가까운 경찰서로 가달라고 했다. 택시는 그를 제주 동부경찰서 오라지구대로 데려갔다.
지구대에 들어가 경찰에게 지갑을 건네자 경찰은 지갑을 열어 신분증과 들어 있는 현금을 확인했다. 67만2천원과 현금카드 한장, 그리고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경찰은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건넨 뒤 누르의 외국인 등록증을 받아 신원을 확인했다. 누르는 경찰서를 나와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지갑을 주웠을 당시 그의 전 재산은 8만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전 재산의 여덟배가 넘는 돈이 들어있는 지갑을 탐하지 않고 열어보지도 않은 채 경찰서에 가져다 줬다. 누르는 “5월 말에도 오후 5시쯤 성산읍 근처 숙소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가 여성의 지갑을 발견해 그대로 버스 운전기사에게 갖다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두번이나 우연히 지갑을 주웠지만 가져갈 생각은 단 한순간도 하지 않았다. 비록 내 수중에 한푼도 없더라도 남의 돈은 가져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르는 예멘의 남서쪽 도시 이브에서 나고 자라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을 다니면서 일하던 중 바레인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바레인에서도 2주 이상 머물 수 없었다. 예멘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의 아내는 현재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고 출산을 앞두고 있다. 누르는 “아내와 2주 뒤에 태어날 아기가 너무 보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여기에서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어 예멘으로 돌아갈 생각도 해봤지만 전쟁 탓에 하늘길이 막혀 그 마저도 어렵다”며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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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서 온 난민 신청자 알하라지(27)가 16일 제주도 숙소에서 취재진에게 휴대폰으로 마을이 폭격당했던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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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부경찰서 오라지구대는 28일 이달 들어 제주에 체류 중인 예멘 난민이 네번이나 제주도민이 분실한 지갑을 찾아 경찰서에 갖다줬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에는 한 예멘 난민이 제주시청 인근에서 주운 지갑을 가져다 줬다. 6일에는 제주시내 한 패스트푸드 점에서 주운 스마트폰과 지갑을 지구대에 신고했다. 21일 한 예멘 난민이 습득해 신고한 지갑에도 현금이 55만원이나 있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제주에 체류 중인 예멘 난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론은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론 분실물을 찾아주는 등 선행만 네 건이 있었다. 예멘 난민과 관련된 범죄신고는 아직까지 없다. 김상훈 오라지구대장은 “순찰을 돌면서 이야기를 해 보면 (예멘 난민들이) 한국에서 법질서를 어기면 큰 불이익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범법 행위는 안하겠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무래도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주민과 예멘 난민을 모두 보호하기 위해서 관내 순찰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 <한겨레21>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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