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저테이의 아버지 깜칫이 지난 4월26일 미얀마 이라와디의 자택에서 불단에 촛불을 밝히며 아들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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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恨민국 세계사 ㅣ 이주노동자 딴저테이의 죽음 그후
지난해 8월 출입국 단속 과정에서
추락사한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
그의 죽음 둘러싼 진실 공방 끝에
인권위 직권조사로 밝혀진 사실들
안전 확보 방안 규정 안 지키고
추락 직후 구조 않고 단속 계속
법무부 “적법” 주장 사실과 달라
책임자 징계 등 장관에게 권고
미얀마 가난한 마을 딴저테이 집
아버지, 매일 아들 극락왕생 기원
가족 생계 짊어진 아들 죽음으로
“팔이 빠진 듯” 부러진 가족의 삶
체류 기한을 어긴 이주노동자는 단속을 피하다 추락 사망했으나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국가는
아무런 법·행정적 책임지지 않아
유족은 한국 정부에 국가배상소송
법무부는 인권위 권고에 응답 없어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허리를 꺾고 이마를 바닥에 붙였다. 아들은 엎드린 아버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영정사진 안에 갇힌 아들은 표정이 없었다. 아버지 깜칫(53)은 매일 불단에 촛불을 밝히며 아들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아들의 죽음이 계속되고 있었다. 책임지는 자 없는 그의 죽음이 ‘돌아오지 못한 집’에서 230일째(지난 4월26일) 연장되고 있었다. 아들의 추락사 사망 17일 전 지난해 8월22일 깜칫은 물고기 잡는 그물을 손질 중이었다. 오후 2시30분께 같은 마을에 사는 조카 떼푸아웅(18)이 달려왔다. 조카가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페이스북에서 읽은 소식을 전했다. 한국에 일하러 간 아들 딴저테이(26)가 응급실에 있다며 주한 미얀마대사관이 가족을 찾고 있었다. 아들이 구급차로 실려 간 까닭을 알 수 없었던 어머니 산싼윈(52)은 점을 치며 아들의 무사를 빌었다. 저녁이 돼서야 한국에 있는 아들의 동료(미얀마인 유웅툰·가명·30)와 전화로 연결됐다. 아들이 출입국·외국인청의 단속을 피하다 추락해 의식불명이라고 했다. 산싼윈이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기절했다. 사망 일주일 전 깜칫이 뇌사 상태인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비자(한국인은 무비자로 미얀마에 입국할 수 있지만 미얀마인의 한국 입국은 비자가 있어야 가능)를 받느라 아들을 만나기까지 열흘가량 걸렸다. 비행기표 값은 원금의 15%를 이자로 약속하고 빌렸다. 이름을 불렀지만 4년여 만에 본 아들은 눈을 감은 채 답하지 않았다. 사망 당일 9월8일 아침 8시15분 딴저테이가 숨을 멈췄다. 병원 사망진단서는 사인을 ‘외상성 뇌출혈’이라고 썼다.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였고 의도성 여부는 ‘미상’으로 기록됐다. 깜칫은 아들의 장기를 한국인 4명에게 기증했고 주검은 화장해 인천가족공원에 뿌렸다. 사망 17일 전 “닭고기 많이 먹자.” 경기도 김포시 구래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딴저테이가 점심 배식을 기다리며 말했다. 아파트 지하 기초 놓는 일을 하느라 그와 동료들은 지쳤고 배가 고팠다. “이거 마무리하면.” 딴저테이와 헤인(가명·28)은 ‘지금 하고 있는 공사만 끝내고 귀국하자’는 대화를 이날만 세번째 나눴다. 딴저테이와 헤인과 유웅툰은 주거비를 아끼려 한집에서 살았다. 유웅툰은 10여명으로 구성된 이주노동자 철근팀의 팀장이었고, 딴저테이와 헤인은 그의 팀원이었다. 그들이 마주 앉아 좋아하는 닭고기를 먹으려던 순간이었다. 낮 12시5분 인천출입국·외국인청과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 단속반이 식당으로 들이닥쳤다. 단속반은 공사 현장 관계자에게 사전 협조와 동의(규정상 필수 절차)를 구하지 않았다. “도망가.” 딴저테이가 외치며 창문으로 달려갔다. 그가 통과한 직후 창문이 차단당하자 헤인은 출입문으로 빠져나와 몸을 숨겼다. 유웅툰은 식당(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임시구조물) 옆 창고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야 ××놈들” “앉아 인마, 죽으려고”…. 단속반의 욕설이 터졌다. 단속반원들은 등록·미등록과 국적을 따지지 않고 수갑을 채웠다. 체포부터 한 뒤 신분 확인은 나중에 했다. 단속반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고 체포 취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창고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유웅툰은 밖에서 구급차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두 시간 뒤 창고에서 나왔을 때 그는 딴저테이가 추락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식당 밖으로 도망쳤던 헤인은 “네 친구 떨어졌다”는 말을 현장소장한테 들었다. 낮 12시7분 딴저테이가 창밖 7.5m 아래로 추락했다. 그보다 먼저 한 명이 창문을 지나 1m 건너편의 지하주차장 흙막이 구역 공사장으로 넘어갔다. 딴저테이가 뒤이어 창틀에 다리를 올렸다. 창문 밖을 지키던 단속반원이 손으로 그의 무릎을 제지하는 장면이 단속반의 바디캠 영상에 찍혔다. 손을 밀치고 창문에서 뛰어내린 딴저테이는 공사장 비계에 내려앉는 듯하다 영상에서 사라졌다. 그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발견됐다. 추락을 확인한 뒤에도 단속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119에 신고전화만 하고 구조엔 나서지 않았다. 사고 지점에 가장 먼저 도착해 그의 상태를 확인한 사람도 공사현장 소장이었다. 12시15분에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단속반원들이 아닌 공사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를 구조했다. 12시58분 구급차가 병원으로 출발했다. 출동한 경찰에게 단속반은 “정상적으로 단속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공사현장 관계자가 항의하며 언쟁이 벌어졌다. “안전 확보도 안 하고 막무가내로 들어와서 팔을 잡아채면 어떡하나.” 단속은 공사장 주변에서 오후 5시께까지 이어졌다. 사망 뒤 ‘살인단속 규탄 및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씨 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청와대 앞으로 오체투지를 하며 죽음의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창문을 넘던 딴저테이가 단속반에 다리를 붙잡혀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고 목격자들과 대책위는 주장했다. 미얀마 현지 언론들(<세븐데이 데일리 뉴스> 등)도 딴저테이 사망과 진상규명 요구를 자국인들에게 전했다.
미얀마 양곤에서 차로 1시간30여분 걸리는 곳에서 이라와디강의 지류인 빨라잉강이 흘렀다. 딴저테이의 집은 강 건너 포콘수마을에 있었다. 포콘수마을에서 쌀을 실어온 배들이 강가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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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저테이의 어머니 산싼윈이 한국에서 보내온 아들의 옷들을 꺼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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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깜칫과 어머니 산싼윈이 아들 딴저테이의 영정을 들고 집 앞에 섰다. 판잣집을 허문 자리에 아들이 한국에서 벌어 보낸 돈으로 조금씩 새 집을 지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돈이 끊기자 철근 뼈대를 드러낸 채 2층 공사가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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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지난 1월2일 서울 광화문광장 분향소를 찾아온 깜칫씨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 딴저테이 대책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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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 쫓아내면 고용창출”된다는 법무부의 단속논리
일자리 둘러싼 한국인-외국인
갈등 구도로 단속 정당성 주장 정부는 합동 단속 강화 이유로 미등록 체류자 급증을 들고 있다. 2019년 3월 현재 미등록 체류자는 35만6095명(전체 체류자 237만9805명의 14.9%)이다. 최근 급증 배경엔 지난해 평창겨울올림픽 성공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정부의 무사증 확대가 크게 작용했다. 2017년 12월 말(25만1041명)부터 2018년 5월 말(31만2346명) 사이 증가한 미등록 체류자 6만1305명 중 5만2213명이 무사증 입국자였다. 정부가 “미등록을 양산하는 제도와 정책은 그냥 두고 필요할 때마다 단속으로 숫자 관리에만 치중”(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운영위원)한다는 지적이 인다. 이주노동자 취업의 근거인 고용허가제도 미등록 양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폭언·폭행을 당하고 근로조건이 열악해도 사업장을 이탈하면 미등록이 된다. 고용주가 사업장 이동에 동의해도 3개월 안에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미등록이 되고, 마흔살 이상의 노동자(고용허가제는 18살 이상 40살 이하만 허용)가 한국에서 일하려면 미등록이 될 수밖에 없다.”(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2000년부터 2017년까지 단속으로 강제퇴거된 사람만 34만800여명이었다. “법무부, 40~50대 가장의 마지막 피난처 건설현장 강력 단속.” 딴저테이 사망 12일 뒤(2018년 9월20일) 법무부는 “불법체류 외국인이 건설업 등에서 국민 일자리를 잠식하는 것을 막겠다”며 특별 단속 대책을 발표했다. “불법체류 취업자들이 차지한 국민의 일자리를 회복한다는 점에서 고용창출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설명이 따랐다. 전년 동기 대비 3천명 증가에 그치면서 취업자 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뉴스(지난해 8월)가 떠들썩하게 보도된 지 한달 만이었다. 법무부는 일자리를 둘러싼 한국인과 외국인의 갈등 구도로 단속의 정당성을 풀어냈다. 취업난을 이용한 새로운 단속 논리의 등장이었다. 이주노동자가 건설시장의 선호 노동력이 된 배경엔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있었다. 원청은 공사기간 단축과 사업비 축소로 하청업체를 압박했다. 하청업체는 싼값에 부리되 산업재해나 임금체불에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해 비용을 줄였다. 한국은 이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는 이주노동자들 없이는 건물이 올라가지 않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이 부른 건설노동시장의 왜곡을 외면하고 이주노동자에게 고용난의 책임을 돌리려 한다는 비판이 법무부를 향했다. 이문영 기자
갈등 구도로 단속 정당성 주장 정부는 합동 단속 강화 이유로 미등록 체류자 급증을 들고 있다. 2019년 3월 현재 미등록 체류자는 35만6095명(전체 체류자 237만9805명의 14.9%)이다. 최근 급증 배경엔 지난해 평창겨울올림픽 성공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정부의 무사증 확대가 크게 작용했다. 2017년 12월 말(25만1041명)부터 2018년 5월 말(31만2346명) 사이 증가한 미등록 체류자 6만1305명 중 5만2213명이 무사증 입국자였다. 정부가 “미등록을 양산하는 제도와 정책은 그냥 두고 필요할 때마다 단속으로 숫자 관리에만 치중”(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운영위원)한다는 지적이 인다. 이주노동자 취업의 근거인 고용허가제도 미등록 양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폭언·폭행을 당하고 근로조건이 열악해도 사업장을 이탈하면 미등록이 된다. 고용주가 사업장 이동에 동의해도 3개월 안에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미등록이 되고, 마흔살 이상의 노동자(고용허가제는 18살 이상 40살 이하만 허용)가 한국에서 일하려면 미등록이 될 수밖에 없다.”(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2000년부터 2017년까지 단속으로 강제퇴거된 사람만 34만800여명이었다. “법무부, 40~50대 가장의 마지막 피난처 건설현장 강력 단속.” 딴저테이 사망 12일 뒤(2018년 9월20일) 법무부는 “불법체류 외국인이 건설업 등에서 국민 일자리를 잠식하는 것을 막겠다”며 특별 단속 대책을 발표했다. “불법체류 취업자들이 차지한 국민의 일자리를 회복한다는 점에서 고용창출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설명이 따랐다. 전년 동기 대비 3천명 증가에 그치면서 취업자 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뉴스(지난해 8월)가 떠들썩하게 보도된 지 한달 만이었다. 법무부는 일자리를 둘러싼 한국인과 외국인의 갈등 구도로 단속의 정당성을 풀어냈다. 취업난을 이용한 새로운 단속 논리의 등장이었다. 이주노동자가 건설시장의 선호 노동력이 된 배경엔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있었다. 원청은 공사기간 단축과 사업비 축소로 하청업체를 압박했다. 하청업체는 싼값에 부리되 산업재해나 임금체불에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해 비용을 줄였다. 한국은 이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는 이주노동자들 없이는 건물이 올라가지 않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이 부른 건설노동시장의 왜곡을 외면하고 이주노동자에게 고용난의 책임을 돌리려 한다는 비판이 법무부를 향했다. 이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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